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둘러싼 ‘별장 성접대·성폭력’ 등 의혹을 파헤칠 ‘법무부·검찰 과거사위원회 수사 권고 관련 수사단’이 29일 발족했다. 여환섭 청주지검장을 단장으로 차장검사 1명, 부장검사 3명 등 검사 총 13명 규모로 출범했으며 향후 수사가 확대된다면 검사가 추가로 보충될 여지도 있다. 당분간 여론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사단이 앞으로 헤쳐가야 할 역학관계와 이와 관련된 과제들을 짚어본다.
수사단 발족 경위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말 건설업자 윤중천씨, 그와 내연관계로 알려진 권모씨 간 고소로 촉발된 이 사건은 김 전 차관의 낙마 이후 성관계 동영상 보도, 이에 대한 두 차례 경찰·검찰 수사를 거치며 알려진 사실들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정작 김 전 차관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아 사회적 공분은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사를 벌이면서 다시 한번 사회적 관심이 모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 조사단이 김 전 차관을 공개 소환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고, 지난 22일 태국으로 출국하려던 김 전 차관이 긴급출국금지를 당하면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이에 과거사위는 사흘 후 열린 회의에서 조사단 보고를 받고 검찰에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 등에 대해 우선 수사 권고를 했다.
◇김학의 뇌물수수·특수강간 혐의 입증될까=김 전 차관이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수사단은 이번에 김 전 차관의 혐의를 바닥까지 샅샅이 살필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과거사위가 권고한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차관과 윤씨의 계좌 추적과 압수수색 등 각종 강제수사가 예상된다. 앞선 수사들에서 검·경은 두 사람의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이 두 차례나 무혐의를 받은 특수강간 의혹에 대해선 아직 과거사위가 수사 의뢰하진 않았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 사건에서 가장 의문스러워 하는 부분이 특수강간 여부인 만큼 수사단이 과거사위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지 않더라도 규명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사단이 2013년 1차 수사 당시 ‘경찰 부실수사’와 ‘검찰 봐주기 수사’ 의혹에 대해 어떠한 결과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했던 사건을 놓고 검찰은 경찰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시각이고 경찰은 검찰이 영장 등으로 훼방을 놓았다고 의심한다. 따라서 조사단은 1·2차 수사 당시 검·경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무혐의 처분은 적절했는지 등을 판단하는 수사도 진행될 것이란 분석이다.
◇김학의 내정 전엔 청와대 외압? 경찰의 은폐?=또한 현직 여야 국회의원이 연루된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 의혹도 수사단 앞에 놓여 있다. 최근 김학의 전 차관 임명 전 보고 여부를 놓고 당시 청와대 민정라인과 경찰 수사·정보라인이 벌이고 있는 진실공방을 규명하는 과제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현 김앤장 변호사),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당시 청와대 민정라인은 경찰의 김 전 차관 동영상 첩보·내사 여부를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나 당시 경찰 측 복수 관계자는 청와대에 구두·서면·대면으로 수차례 보고했고 내사 진행을 질책받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현재 경찰 측에서 청와대의 어느 라인에 보고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만큼 경찰 인사를 관리했던 이정현 전 정무수석과 강신명 전 사회안전비서관 등 정무라인 등도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또한 윤씨가 최근 최순실씨와의 관계를 자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 비서관)도 수사선상에 오를 여지가 있다.
또한 김 전 차관의 낙마 이후 청와대에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김 전 차관 내사 진행 상황을 알아보고 당시 경찰 수사라인을 모조리 교체한 데에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지 밝히는 것도 수사단에게 숙제로 던져진 상태다. 과거사위는 앞서 곽 전 민정수석과 이 전 민정비서관의 당시 경찰 내사 방해 및 인사 조치에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며 수사 의뢰했다.
◇검찰은 결자해지, 청와대는 표정관리, 야당은 노심초사= 이 수사는 검찰에게는 곤혹스러운 과제라는 게 중론이다. 이번에 김 전 차관 혐의 입증에 성공하면 당시에 경찰 수사 지휘든, 검찰 보강 수사든 간에 부실했다는 것을 자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혐의 입증에 실패한다면 국민들에게 더욱 싸늘한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검찰에게 결자해지 할 기회가 온 만큼 수사에 성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는 표정관리하는 모습이다. 조 전 비서관 외에는 아직 드러난 연루자가 없으며, 이번 정부에서 중용하고 있는 검찰 인사들은 당시 수사라인에는 빗겨서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수사에서 당시 검찰 수사에 조직 내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검찰 개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으며,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도 청와대의 바람대로 검찰의 권한을 상당 부분 분산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가장 코너에 몰린 것은 야당이다. 문재인 대통령 딸 가족의 부동산 해외이주 의혹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는 곽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된 데다, 수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해서도 김 전 차관 임명 당시 동영상의 존재를 안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한당은 수사가 진척됨에 따라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노심초사하게 되는 상황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은 물론 청와대·여당과 야당 모두 수사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처지”라며 “정치권이나 수사기관의 수사 대상자들이 언론 등을 통해 수사에 적극 항변하는 등 요란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