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으로 규제만 강화할 뿐 화학산업에 대한 진흥책은 고사하고 이해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국내 한 화학업체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미·중 무역분쟁에 이은 화관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 확대로 국내 화학 업계가 제대로 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없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실제 중국은 국내 업체의 주요 수출품인 파라자일렌(PX) 공장을 올 연말부터 본격 가동하며 국내 화학업계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화학물질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유통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화관법 개정안이 2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국내 화학업체의 목줄을 죄인다.
화관법 개정안에 대해 주요 화학업체들은 “지나친 규제로 경영 환경이 악화 되고 있다”며 하나같이 볼멘소리를 냈다. 화관법은 지난 2015년 옛 유해화확물질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며 탄생했다. 법안 통과후 한달만에 국회를 통과하며 졸속 개정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 통과된 화학물질 확인신고 관련 사항 등은 2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바로 시행된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화관법 24조 및 시행규칙이다. 화관법 시행규칙에는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에 대해 ‘저압가스 배관검사’를 의무화했다. 또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을 증설하려는 경우에는 장외영향평가서를 변경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다.
화관법 개정에 기장 민감한 산업은 의외로 반도체 관련 업체다. 반도체는 세척, 증착 등의 과정에서 수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분량, 농도 등이 모두 영업기밀이다. 작은 팁이라고 노출 될 경우 수십년간 쌓은 노하우가 노출될 수도 있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영업기밀을 국가가 지켜준다고 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통상마찰의 위험도 가지고 있다. 이미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자국 기업의 영업비밀보호를 문제 삼은 만큼 시행에 앞서 계속 적인 문제 제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학업계에서는 화관법 개정안이 과잉 규제를 우려하는 업계 목소리를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화관법이 시행된 지난 2015년 공장 인근의 지역주민에게 화학물질 유해성 등을 일일이 고지했지만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로부터 ‘굳이 왜 이렇게 까지 하느냐’는 민원을 들을 정도로 원성이 자자했다”며 “안전환경보건관리(EHS) 부서 인력들은 이 때문에 밤새 야근을 하는 등 정상적인 인력 운용이 어려웠으며 지금도 관련 불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 화관법 48조는 ‘화학사고 위험 및 응급대응 정보 요약서’를 △우편 △전자우편 △개별설명 △인터넷 홈페이지 △설명회 및 공청회 등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알리게 돼 있지만 실효성은 물음표다.
특히 화관법은 준수항목이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늘어난 점은 화학업체는 물론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종 등에도 부담이다. 또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구조물이나 설비 안전상의 위해가 우려될 경우’에 안전진단을 받는 반면 화관법은 위험도에 따라 4, 8,12년 간격으로 정기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자칫 저압가스 배관검사 등이 걸릴 경우 반도체 공장 등 주력산업 생산 라인이 모두 멈춰야 할 수도 있다. 독성가스가 나오는 유해물질을 다루는 업체의 경우 한번 배관검사에 14개월이 걸린다는 조사도 내놓고 있다.
소량의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중소업체 또한 불만을 제기한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화관법에 대해 문제가 되는 건 사용량에 상관없이 화학물질을 사용할 경우 무조건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유해물질을 보관하려면 어떤 기준 거쳐야 하고 어떤 것을 써야 하는 등의 제한이 있는데 관련 조건이 까다로워 중소업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양철민·박효정·심우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