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관점]전자칩 라켓 하나면 사무실서 샤라포바와 테니스 즐길 수 있다

<스포츠가 4차 산업혁명을 만났을 때>

■'염소의 저주' 시달렸던 시카고컵스

부진 시달리자 3D 모션픽처 활용

선수들 모든 동작 촬영 데이터화

핵심 지점 포착해 신체모형 제작

상대 투수 장단점 맞춰 출전시켜

■평창올림픽 韓남자 봅슬레이 경기

봅슬레이에 초소형 무선 카메라 부착

실시간으로 고화질 화면 내보내

5세대 통신기술 '싱크뷰' 덕분

안방서 시속 150㎞ 속도감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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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봅슬레이 2인승 경기가 열린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원윤종·서영우 선수가 경기를 끝낸 직후 전광판에는 ‘선수 1인칭 시점’ 장면이 방영됐다. 썰매에 앉아 질주하는 선수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그대로 전광판에 펼쳐진 것이다. 시청자들은 마치 선수가 돼 경기하는 것처럼 시속 150㎞로 달리는 썰매의 속도감과 덜덜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이 이렇게 생생한 화면을 내보낸 것은 5세대(5G) 통신기술을 이용한 ‘싱크뷰(sync view)’가 있었기 때문이다. 싱크뷰는 봅슬레이에 초소형 무선 카메라와 통신 모듈을 부착해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기술이다. 사람들은 4년 전 열린 소치올림픽 때까지 봅슬레이가 트랙을 휙 하고 지나가는 모습만 본 것과 비교하며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KT는 평창올림픽에서 싱크뷰와 함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점프하는 장면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는 타임슬라이스,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자신이 선택한 선수의 이동 경로 등을 볼 수 있게 하는 옴니뷰 기술 등을 선보였다. 스포츠는 이렇게 평창올림픽에서 5G라는 고속 통신기술과 융합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사실 이 정도는 맛보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스포츠는 언젠가부터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술과 합체해 이제껏 경험해본 적이 없는 신세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독일 탁구의 전설로 불리는 티모 볼 선수는 탁구를 배운 로봇팔 ‘아길러스’와 대결을 벌였다. 볼은 다행히 11대9로 이겼지만 아길러스가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을 거뜬히 받아내는 등 온갖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길러스 이후 AI 로봇 골키퍼인 ‘골파고’가 리오넬 메시의 강력한 슈팅을 막아내고 치타 로봇이 100m를 10초 안쪽으로 뛰어 우사인 볼트를 놀라게 하는 등 기계가 스포츠에서 사람보다 앞서 가려는 시도가 잇따랐다. 이런 기계는 바둑 기사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처럼 딥러닝 등의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진화함으로써 사람을 이기는 데서 더 나아가 사람을 가르치는 코치로서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 스위트케이의 천제민 이사는 “4차 산업혁명이 스포츠의 메커니즘을 급속도로 바꿔놓고 있다”며 “시공간을 넘어 스포츠를 경험하는 스포츠 빅뱅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스포츠산업 5년간 연평균 3.6%씩 성장

4차 산업혁명과 만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지만

2015년 첫 스포츠ICT학과 개설…걸음마 단계




4차 산업혁명이 스포츠 승부의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최초의 사례는 아마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시카고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시카고컵스는 2016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이른바 ‘염소의 저주’에 시달려야 했다. 1945년 월드시리즈에서 한 컵스 팬이 염소를 끌고 컵스의 홈구장에 입장하려다 저지당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컵스가 월드시리즈에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컵스가 이 저주에서 벗어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빅데이터였다. 컵스는 3차원(3D) 모션픽처 기업인 키나트랙스의 마커리스(markerless) 모션픽처 기술을 이용해 별도의 표시장치 없이 선수들의 온갖 동작을 촬영했고 이를 토대로 경기할 때 뼈와 골격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히 기록해 3D 영상을 만들었다. 컵스는 이 영상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생성한 뒤 각 선수 신체의 핵심 지점을 포착해 다양한 신체 모형을 만들었다. 이 모형을 보면 각 선수가 어떤 포즈를 취할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지, 반대로 어떨 때 부진하고 슬럼프에 빠지는지를 알 수 있다. 컵스는 이를 이용해 상대 팀 투수의 장단점을 파악해 그에 맞는 타자를 내보내거나 자기 팀 선수 가운데 최고의 기량을 펼치는 선수 위주로 게임에 출전시켰고,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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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는 겉으로는 선수들이 공을 던지고 때리지만 속으로는 빅데이터를 확보하는 데이터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경기에서 생산되는 데이터양이 웬만한 도서관 정보량과 맞먹을 정도로 막대하다. 감독은 여기서 생산한 정보를 이용해 상대 팀의 특정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그 선수에 맞춰 1루수의 수비 위치를 평소보다 오른쪽으로 20㎝ 움직이게 하는 식으로 지시를 내린다. 상대 팀 타자의 타구가 그 위치로 더 자주 갔다는 정보를 감독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타율·방어율·승률 등 몇 가지 기록만 놓고 승부에 나서던 것과 비교하면 프로선수가 초등학생과 시합하는 것과 같다.

사무실에서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마리야 샤라포바와 테니스 한 게임을 즐길 날도 머지않았다. 스마트 글라스를 끼고 전자칩이 내장된 테니스 라켓만 손에 쥐면 준비는 끝난다. 코트 저편에서 샤라포바가 특유의 비명 소리를 내며 자신의 최고 속도인 시속 180㎞(물론 이 속도는 조절할 수 있다)로 서비스를 넣는다. 이 공을 포핸드로 받아넘기는 순간 라켓이 크게 흔들리며 팔꿈치에 ‘찡’하는 충격이 온다. 공이 워낙 빨라 라켓 중심에 맞추지 못하고 5㎝ 아래쪽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의철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장은 “테니스 라켓 등 휴먼 인터페이스의 일부 기술만 개발하면 조만간 자기가 원하는 선수를 선택해 그 선수의 실제 퍼포먼스 그대로를 느끼며 경기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스포츠 용품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시대가 됐다. 스포츠 용품사인 아디다스는 2016년부터 스마트 공장인 ‘스피드팩토리’에서 운동화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신발 만드는 공정을 자동화한 데 그치지 않고 AI·로봇·빅데이터·3D프린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운동화를 만든다. 기존 신발회사는 새 운동화를 기획·생산해 고객에게 팔기까지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스피드팩토리에서는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5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딱 맞는 운동화를 만들어낸다. 미국 스포츠웨어 회사인 언더아머는 센서를 내장한 스마트 신발이나 스마트 잠옷을 만들어 미국 스포츠웨어 시장에서 단기간에 아디다스를 꺾고 2위에 올랐다. 이 회사는 스포츠웨어 회사 대신 디지털 회사를 지향하며 경쟁 상대로 삼성전자와 애플을 지목한다.

아디다스와 언더아머의 사례에서 보듯이 스포츠는 4차 산업혁명과 만나면서 시장을 점점 더 키워나가고 있다. 스포츠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1,430조원으로 자동차 판매액(1,580조원)과 맞먹는다. 국내 스포츠 산업도 2017년 기준 74조원 규모로 최근 5년간 연평균 3.6% 성장해왔다. 이런 추세에 맞춰 스포츠 산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스포노믹스’는 1인 가구와 욜로(YOLO)족의 증가로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더구나 고령화 시대를 맞아 건강을 유지하며 나이가 들어간다는 ‘액티브에이징’ 개념이 중요해지면서 스포노믹스는 국가적으로도 키워야 할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스포노믹스 산업을 키우려면 이를 담당할 전문인력부터 양성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의 스포노믹스 인력 육성은 이제 시작 단계로 2015년 특수대학원 내에 스포츠ICT융합학과를 개설한 상명대 정도가 있을 뿐이다. 상명대는 지난해 이 학과를 일반대학원으로 옮겨 박사과정을 추가했으며 올해에는 이를 스포츠지능정보학과로 개편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스포츠 능력을 계속 고도화할 것이다. 이쯤 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그 끝은 어디일까. 예를 들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골프 샷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로리 매킬로이가 자신의 샷 능력을 더욱 키워 500m짜리 파5 홀에서 원 온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물론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골프가 아니기 때문이요, 가능하지 않은 것은 그때 매킬로이는 더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스포츠 능력을 최고로 고도화하는 어느 순간이 되면 스포츠를 구성하는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는 오염되고 결국 스포츠 자체가 파멸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행복과 즐거움을 앗아간다고 하더라도 스포츠가 주는 행복과 즐거움은 마지막으로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강하게 움직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살아 있는 한 그 즐거움을 기계에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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