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강원도 속초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탄내가 진동해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속초를 덮친 큰 불길은 잡았다지만 화마가 휩쓴 생채기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린 건물들이었다. 누군가의 집이었을 건물들은 검은 그을음으로 뒤덮여 원래의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고 주민들이 일상처럼 들렀을 편의점과 교회 등도 곳곳이 무너져 내려 있었다. 폐허처럼 변해 버린 풍경 속을 주민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갔다. 밤을 샌 듯 초라한 행색을 한 주민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서글픔이 선명히 묻어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많은 경찰과 소방관들이 지역 이곳저곳을 오가며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수습을 진행 중이었다. 산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해 피해를 입었을 사람들을 위해 119 구조견들도 이곳저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의 한 주유소 인근 개폐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엄청난 속도로 속초까지 번져 대형 재난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매일 지나가던 퇴근길과 하굣길이 ‘붉은 하늘’로 바뀌었던 지난 밤에 대해 토로했다. 흡사 전쟁터를 연상하는 풍경에 대부분 주민들이 빠르게 대피를 했지만 상황을 모르던 사람들도 많았다. 커튼을 쳐 놓고 별 생각이 없었던 김모씨의 경우 “긴급 재난 문자를 받고 문을 열었는데 벌겋게 뒤덮인 하늘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특히 놀란 지점은 산불이 번지는 속도였다. 한 주민은 불길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금세 아파트 앞까지 다다랐다고 기억했다. 화염과 건물의 거리는 채 50m도 안 됐고 언제 더 가까워질지 모르던 상황에서 소방대원과 아파트 관리인들이 힘을 합쳐 불길을 진화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통신이 불량이 되며 아기와 함께 집에서 초조하게 남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던 사람도 있었다. 화재로 인해 통신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 불길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23시 15분, 고성 산불 진화를 위해 관계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리면서 “우왕좌왕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강제적 조치 취해서라도 생명 안전 확보 우선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대피소로 이동한 이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에 도시가스 공급업체와 액화 석유(LP) 가스 충전소까지 산불이 내려왔고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날이 밝자 거대해 보였던 붉은 화염은 사그라졌지만 처참한 화재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도로엔 타고 뼈대만 겨우 남은 버스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워져 있었다.
불길이 사그라지자 주민들은 대피소를 빠져나와 다시 아파트로 향했다. 몇몇 주민들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황폐해진 뒷산을 보며 울먹거리고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진화되지 않은 현장을 위해 곳곳에서는 헬기 나는 소리가 들렸다. 고성과 속초를 집어삼킨 불길은 539개의 축구장에 맞먹는 면적을 태우고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림청은 5일 오전 8시 반쯤 “고성 산불의 주불을 잡고, 잔불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주불 진화는 진화율 100%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날이 밝아 진화 헬기들이 뜨면서 다른 화재 지점들도 불길이 잡히고 있다. 산림청은 강원 인제 화재는 50%, 강릉 화재는 20%의 진화율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속초=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 최정윤인턴기자 kitty419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