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부근의 비무장지대(DMZ)가 서울역과 광화문으로, 청와대 옆까지 바싹 다가왔다. 계절적 봄뿐 아니라 ‘역사의 봄’이 다가오는 것일까. 예술가들은 ‘잠수함의 토끼’처럼 예민하기에 이미 수년 전부터 남북한의 분단을 주제로, DMZ를 소재로 작업해 왔다. 그 전시들이 한창이다.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은 DMZ로 직행한다. 옛 대합실 자리에 천장까지 닿을 듯한 망루가 세워져 있다. 가까이 보니, 종탑이다. 안규철 작가의 ‘DMZ 평화의 종’이다. 작가는 “벽을 넘어서려면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벽을 부수려면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면서 DMZ에서 철거된 철조망의 잔해를 녹여 종을 만들었고 벙커의 감시탑의 형태로 종탑을 만들었다. 사람들을 갈라놓던 철조망이 그들을 하나로 모으는 종소리가 됐다. 종은 실제로 울린다.
전시는 비무장지대의 변화를 상상해보는 ‘비무장지대(DMZ), 미래에 대한 제안들’로 시작해 평화를 위해 애쓰는 남북한의 현재 모습을 반영한 ‘전환 속의 DMZ’, 군인·민간인·작가들의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는 DMZ 등을 보여준다. 회화 작품으로만 표현한 DMZ의 역사와 풍경이 있는가 하면 ‘DMZ의 생명환경’만을 별도 전시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불·노순택·임민욱·정연두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지난 2012년부터 강원도 철원군을 중심으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해 온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가 총괄기획을 맡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전시에 힘을 보탰다. 전시는 다음 달 6일까지.
발길을 광화문 쪽으로 향하면 세종대로의 일민미술관에서도 색다른 DMZ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존재를 인정받고 나아가 역사의 별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인문학적 주제 전시 ‘불멸사랑’이 한창이다. 전시는 미술관 3개 층 외에 이례적으로 5층 신문박물관까지 확대돼 열리는 중이다. 역사의 증인인 옛 신문들과 함께 만나는 권하윤 작가의 ‘489년’은 DMZ에서 수색대원으로 근무했던 한 군인의 증언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창가에 마련된 공간에서 VR헤드셋을 끼면 당시의 기억을 증언하는 노병의 실제 육성이 흘러나온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현실 속 가상 공간’인 DMZ를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은 작가적 상상의 힘이다. 현실과 허구, 역사와 상상의 경계를 VR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불멸사랑’전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근대 100년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되쓰기’ 하고자 기획된 전시로 강이연·서용선·이우성·조은지·파비앙 베르쉐르 등이 참여했다. 다음 달 12일까지.
청와대 옆 공근혜갤러리에서는 강원도 삼척의 ‘솔섬’ 사진으로 유명한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가 촬영한 DMZ의 모습이 ‘한국(KOREA)’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DMZ의 끊어진 철길과 서울의 한양도성은 끊길 듯하면서도 이어져 온 한국 역사의 단면이다. 작가는 2005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DMZ를 찾아가 촬영했다. 1980년대부터 미국 해안가의 망대를 찍어 온 작가지만 철조망을 둘러친 해변은 한국에서 처음 봤다고 했다. DMZ에 가까워질수록 철조망은 더 촘촘해지고 무장한 경비대와 망루가 남북으로 갈린 땅을 지키고 서 있었다. 작가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바뀌길 바라며 셔터를 눌렀다. 케나가 찍은 GP 사진은 총 10점이 전시됐다. 여기가 한국인가,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곁에 두고도 무심히 보던 것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게 하는 작가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히 차단됐기에 가까이 들여다보지 못했던 분단의 역사를 탓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다. 전시는 DMZ 뿐만 아니라 서울 풍경과 신안, 제주 등 전국을 아우르며 한국을 이야기한다. 오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