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지난 2017년 3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닌빈시에 베트남 탄콩그룹과 합작으로 생산법인 ‘현대탄콩’을 설립했다. 현대차(005380)는 2011년 탄콩그룹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베트남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다가 2년 전부터 공장을 설립하고 베트남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현대차는 베트남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 총 5만5,924대의 차를 팔아 전년(2만6,881대) 대비 두 배나 성장했다. 지난해 현대차의 베트남 시장 점유율은 19%로 일본의 도요타(28%)에 이어 2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1995년에 베트남에 공장을 설립한 도요타에 비해 현대차의 진출이 20년 이상 늦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현대차의 선전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경제 성장 둔화와 기업 환경 악화, 그동안 주력 시장이었던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 등에 따른 반작용은 지나친 쏠림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정부와 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인도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 기업들의 신남방 전략은 베트남에 치우쳐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베트남 투자 규모는 31억6,200만달러로 전년(19억7,300달러) 대비 60.3% 증가했으며 올해도 전년 수준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돈 KOTRA 하노이 무역관 과장은 “올해 들어 하루 평균 다섯 시간 정도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기업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올해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 대국인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한국의 인도네시아 투자 규모는 4억9,7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3% 줄었으며 태국은 9,500만달러로 10% 감소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베트남의 6분의1, 태국은 30분의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의존도가 높은 것은 이미 일본 기업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태국 등에서는 현지 시장을 뚫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만 하더라도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 다른 지역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도요타·다이하쓰·혼다·미쓰비시·스즈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9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태국도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오래전부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도요타만 하더라도 1960년대부터 태국에 공장을 짓고 현지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섰지만 현대차는 그간 동남아 시장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현대차는 최근 중국 시장의 부진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까지 악화하면서 이제서야 동남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진출이 늦었던 베트남을 제외하고 인도네시아나 태국 등에서는 일본 기업의 아성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베트남의 경우에도 최근 베트남 정부가 현지 기업 육성에 나서고 있고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최대 기업 ‘빈그룹’이 빈패스트라는 브랜드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는 등 현지 경쟁도 심화하고 있어 현대차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앞으로 사업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정부와 제조업체·금융기관들이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계획을 가지고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기업들이 장기적이고 균형 잡힌 계획 없이 각자도생하는 형태로 특정 국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어 쏠림 현상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하노이=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특별취재팀=이상훈 차장, 양철민기자(자카르타), 고병기기자(하노이), 박한신기자(양곤), 박효정기자(호찌민)
*위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경제신문·VN Express(베트남)의 공동 취재를 통해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