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의 기류를 예의 주시하는 청와대의 최근 행보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우리가 남북관계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시기인데, 또 남북관계만 별도로 발전하기가 어렵고, 북미관계와의 발전과 발을 맞추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관계의 발전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북미 대화가 잘 진행되면 그만큼 남북관계가 더 탄력을 받고, 이런 선순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이런 부분을 조금 잘 조화시키면서 균형 있게 생각해 나가는 것이 아주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남북 관계를 끌고 가라는 ‘신중론’에 방점을 찍은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 내부의 다양한 의견 차이들이 있다”며 “이 의견 차이들이 화합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그런 소통의 결과로 좀 더 넓은 의미의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남북 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관계를 견인하겠다는 기조를 고수해 온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관련한 신중한 행보를 당부한 것은, 미국 조야 및 국내 보수층의 남북경협 등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 내 동향을 파악하려는 물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접견해 한미 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튿날인 21일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막후 채널을 맡았던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과 미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의 신기욱 소장을 면담했다.
앞서 한미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 등 부분적 제재완화가 의제로 다뤄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언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 또한 현 시점에서 남북 경협 추진 등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미국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상당히 미국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지지한다는 선에서 무난히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