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무상교육이 올해 2학기부터 3학년 학생들을 시작으로 오는 2021년에는 전면 시행된다. 학생당 연 158만원의 교육비 경감이 기대되지만 재원 분담을 놓고 진통이 불가피해 재정 안정화 방안 없이는 만 5세 아동 무상교육에서 빚어진 ‘누리과정 사태’의 복사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정청은 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 같은 내용의 ‘고교 무상교육 실현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시행안에 따르면 무상교육 재원은 정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50%씩 부담한다. 2021년에 고교 전 학년 무상교육이 시행될 경우 1조9,951억원이 소요된다. 이 가운데 각 시도교육청이 절반가량인 9,466억원(47.5%)을 부담하고 정부(47.5%·9,466억원)와 지자체(5.0%·1,019억원)가 나머지를 책임진다.
이 중 현재 부여되는 각종 고교 지원금을 제외한 정부의 신규 부담액은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소요금액의 40%(7,985억원) 내외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이 현행 지원금(27%·5,388억원)을 제외하고 자체 예산에서 신규로 편성해야 할 금액도 전체 예산의 20.5%(4,078억원)에 달한다. 향후 세수 악화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거나 3년 뒤 새 교육감이 선출돼 협의 과정에서 난항이 빚어질 경우 방안 자체가 표류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특히 2025년 이후 재원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게 돼 있어 다음 정부에서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번 방안은 초중등교육법상 고등학교·고등기술학교의 학생 137만명에게 적용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우리나라만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할 때 고교 무상교육은 시행을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책무”라며 “애초 국정과제 추진계획보다 1년 앞당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세종=황정원기자 heewk@sedaily.com
[고교 무상교육 2021년 전면시행]2024년 이후 재원 조달계획 없어...‘무상대란’ 부를 수도
당정청이 당초 계획보다 1년 빨리 고교 무상교육의 포문을 여는데 성공했으나 지속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내놓지 못해 실제 시행에는 난관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관련 예산을 지방 교육감의 협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다음 교육감 선거 이후인 3년 뒤를 보장할 수 없고 2024년 이후의 조달 계획도 전무해 ‘5년짜리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 법 개정 과정에서 야권의 반발도 예상돼 결국 또 하나의 ‘무상 대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9일 당정청이 내놓은 ‘고교 무상교육 실현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부득이한 수요가 발생할 때 국가 예산에서 별도로 교부하는 ‘증액 교부금’으로 신규 재원의 40%(2021년 기준)로 활용하게 했다. 이로써 일부 교부금 증액은 이뤄진 셈이지만 안정적 재원에는 못 미친다는 게 교육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되레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률을 현행 내국세의 20.46%에서 증액해야 한다는 교육 당국의 요구에 대해 예산 당국이 재정 여건을 고려, 한시적으로 짜낸 임시 방편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예산 전액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의존하는 17개 시도 교육청들은 전체 무상교육 재원의 약 50%를 담당하면서 이중 20.5%를 신규로 짜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액 교육청 부담인 올해는 세계잉여금이 11년 최대치로 발생해 기존 재원을 허물지 않아도 재원 충당이 가능하다. 세계잉여금이란 지난해 예상보다 세수가 많이 걷힌 데 따른 결산상 잉여금을 교부금률에 따라 각 교육청에 배분한 것으로 누리과정으로 인한 기채 상환 외 고교 무상교육 재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고교 무상교육에 따른 신규 추가 재원이 내년 1조원, 후년 1조3,000억원 내외로 예상돼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 당국의 한 관계자는 “세수 악화로 각 부처의 재량 지출도 줄어들 것으로 보여 기타 교육 예산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감들의 협의체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이날 고교무상교육과 관련한 의견 수렴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이날 “의견수렴을 거쳐 이르면 내일(10일) 오후 중 입장문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 점도 정책의 지속성에 의문을 더한다. 정부의 일자리ㆍ복지 예산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정부 지출 삭감으로 조달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다 경기둔화에 따라 세입여건은 점점 힘들어질 수 밖에 없어 앞으로 무상교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 정부의 의무지출 비중도 올해 51.4%에서 더 높아지게 됐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장에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 경직성 지출을 늘리는 부분이 꼭 필요한지 재점검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며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 자칫 미래 세대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정부 때인 2025년부터의 재원계획이 없는 점도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가 재정이 계속 투입될지 비율이 낮아질지는 그때 가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교육청과의 협의에 의존하게 되면서 3년 뒤 교육감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교육 예산 자체가 교육감의 재량권 아래 있기에 이번 방안은 시도 교육청의 협조가 없다면 파행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전국 교육감들의 경우 무상교육에 적극적인 진보성향 교육감이 전체 17명 가운데 14명에 달하지만 차기 선거에서 상황이 뒤바뀌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결국 앞으로 정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엇갈릴 경우 지난 2016년 누리과정 사태와 같은 또 다른 ‘무상 대란’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입법 과정에서의 야당의 공세도 관건이다. 증액 교부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손질해야 하는데 앞서 야권은 내년 총선용 ‘선심성 공약’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고교 무상교육 실시에 찬성한다”면서도 “재원 마련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세종=황정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