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같은듯 다른…수묵에 드리운 두 거장의 봄

갤러리현대 '청전·소정展' 시대별 작품 80여점 전시

청전, 點 숱하게 찍어 묘사…은근하면서도 과감함 느껴져

소정, 치솟은 절벽·나무 '수직적 구도'로 현대적 느낌 물씬

청전 이상범 ‘산가춘색’ 1959, 종이에 수묵담채, 111x258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청전 이상범 ‘산가춘색’ 1959, 종이에 수묵담채, 111x258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복숭아꽃, 살구꽃에 하얀 배꽃까지 피어올랐다. 꽃향기 자욱해 푹 안기고 싶은 그림은 청전 이상범(1897~1972)이 1959년에 그린 ‘산가춘색’이다. 나지막한 언덕배기 초가집을 감싸며 봄꽃이 만발했고 그 아래로는 명랑하게 재잘거리는 개울이 흐른다.

봄이 여기뿐이랴. 소정 변관식(1899~1976)의 ‘도화산촌’의 꽃내음은 건너 마을 선비들까지 유람 오게 만들었다. 황폿자락 휘날리는 선비들의 발걸음이 짧은 봄 가버릴세라 분주하다. 조선 초,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속 무릉도원을 그렸다는 ‘몽유도원’도 이런 모습이었으려나. 더욱 가슴 벅찬 것은 이것이 화가가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본 우리 산하의 실경(實景)이라는 사실이다.

20세기 중반 한국화단의 양대산맥인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의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소정’전으로, 10일 개막한다. 청전의 작품은 삼청로 초입에 자리 잡은 현대화랑에, 소정은 갤러리현대에 전시된다. 작가의 초기작인 1940년대 그림부터 시대별 대표작을 두루 아우르며 총 80점이 걸렸다.


이상범은 붓을 기울이고 눕혀 쌀알 같은 점(點)을 숱하게 찍어 풍경을 그린다. ‘청전양식’이라 불리는 기법이다. 은근하면서도 의외의 과감함이 있어 인상파를 방불케 한다. 청전이 그린 한국의 산천은 나직한 언덕과 개울이 주를 이룬다. 그 자연을 가르며, 연장 실은 검은 소를 앞세워 새벽일 나서는 농부가 걸어간다. 힘겨워도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이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인물들이다. 화가는 고단한 삶일지언정 낭만적으로, 가난해도 아늑한 분위기로 표현하며 위로했다. 송희경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는 “툭툭 쳐 주름 내는 특유의 청전준법으로 그린 산 표현”을 눈여겨보라 권한다.

관련기사



소정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추색’, 1959년작, 종이에 수묵담채, 155 x 117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소정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추색’, 1959년작, 종이에 수묵담채, 155 x 117cm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동시대 화가이건만 변관식의 화풍은 전혀 다르다. 둘 다 자연의 생명력을 담고 있으나 청전은 은근하게 강인하고, 소정은 웅비하듯 강렬하다. 청전이 가로로 긴 화폭에 수평적 구도를 즐겨 그렸다면 소정은 세로로 긴 그림에 과감하게 치솟은 절벽과 나무를 그렸다. 재료가 수묵일 뿐 그림 구성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먹을 말려가며 쌓아가는 적묵법(積墨法)과 선 위에 묵점을 찍어 깨뜨리는 파선법(破線法)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변관식은 8년 동안 금강산을 사생해 ‘금강산 화가’라 불렸고 실제 다녀온 곳을 그리는 실경으로 유명했다.

당대의 거장들은 가난했던 시절의 풍경에 사회상을 함축했다. 박수근의 아낙이 수더분한 어머니와 누이들이고, 이중섭의 아이들이 벌거벗고 뛰노는 것처럼. 청전과 소정의 경우 초가집이 그렇다. 청전의 산 중턱 초가는 누추하지만 희망이 있다. 소정의 샛노란 초가지붕은 유람객의 눈길을 끌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 생전의 변관식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나 방법을 배우기 전에 시대를 사는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고 이상범은 “우리의 그림에는 우리의 분위기가, 우리의 공기가, 우리의 뼛골이 배어야 한다. 내가 그린 산수나 초가집들은 우리나라가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는 세계다”라며 ‘우리적인 그림’을 강조했다.

명성에 비해 작품값은 초라하다. 한국화가 시장에서 저평가됐기 때문이다. 이상범의 작품은 지난 2016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폭 261㎝의 1957년작 ‘영막모연’이 3억4,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변관식의 경우 1970년대 초반에 그린 ‘내금강 보덕굴 추색’이 2010년 경매에서 2억원에 팔린 적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경매 최고가 낙찰작 톱10에 이상범 정도는 속했으나 지금은 서양화와 현대미술에 그 자리를 완전히 내줬다. 서구 근대미술이나 중국·일본의 20세기 초 거장의 작품값과 견주면 턱없이 낮은 위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시는 6월16일까지.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