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혁(사진) 해양수산부 장관이 취임 나흘 만에 한일 어업협정 논의 재개를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어업협정이 3년 가까이 표류하면서 지역 어민들의 고충이 날로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금지 규제를 놓고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에서 한국의 패색이 짙어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어업협상 테이블에 무리한 요구사항을 올리면서도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장벽을 허물면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쳐왔는데 이번 판결로 수입이 강제 재개될 경우 일본의 ‘몽니’가 한층 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문 장관은 2019년도 어업을 위한 한일 어업협정 협상 재개를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한국과 일본은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영해기선으로부터 200해리 수역)에서 조업이 가능한 어선 수 등을 두고 매년 어업협상을 벌여왔다. 양국 EEZ가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협상은 지난 2016년 결렬된 뒤 3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측이 수산자원 고갈 등을 이유로 한국 측 연승어선의 자국 내 입어 규모를 206척에서 73척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면서다.
협상이 표류하는 동안 국내 어선들의 조업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정부의 초조함은 더해가고 있다. 일본 EEZ에서 갈치잡이 조업을 하던 제주 어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900여㎞ 떨어진 동중국해까지 나가 고기를 잡는 실정이다. 제주 어선들이 원거리 조업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사례가 지난해만도 37건에 달한다.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바람에 기름 값 등 조업 경비가 늘어나는 점도 어민들의 시름을 깊게 한다.
WTO에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협정 위배’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협상은 더 꼬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후쿠시마 수산물과 관련한 일본과의 분쟁을 한일 어업협정과 연계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본이 어업협정을 지렛대로 삼아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풀려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WTO 패소 이후 수입제한 조치가 해제되면 일본 입장에서는 어업협정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협상의 주도권을 일본이 쥐고 있는 점도 골칫거리다. 한국은 상대국 EEZ에서 올렸던 어획량이 연간 1만8,000톤에 달해 일본(7,000톤)에 비해 협정 의존도가 높다. 아울러 일본은 피해 규모를 줄일 태평양 어장도 갖고 있다. 일본이 협상에서 요구 수준을 내리지 않고 더 세게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문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협상 준비에 돌입한 것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TO 판결은 12일 발표된다. 우리 정부는 패소하더라도 일본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수입금지 완전해제까지는 막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때문에 협상으로 해결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적 반발을 고려해 금지 조치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 일본에 합법적으로 무역보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이미 일본은 강제노역 판결 이후 관세 인상 운운하며 보복조치를 벼르고 있다. 정치적 갈등을 이유로 무역보복을 할 경우 WTO 규정 위반이 될 수 있지만 ‘수산물 수입 재개 불이행’을 명분으로 공세에 나서면 제지가 쉽지 않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