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주변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일 간 무역분쟁에서 한국이 예상을 깨고 사실상 승소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는 11일(현지시간) 일본이 제기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 사건에서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의 판정을 뒤집고 한국의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정했다.★관련기사 2면
무역분쟁의 최종심 격인 상소기구는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제한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1심에서 일본의 논리를 수용했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결정을 배제하고 모두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심 패널은 지난해 2월 한국의 수입규제 조치가 WTO의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 협정)’에 불합치한다며 일본 손을 들어줬는데 SPS 관련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상소기구는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해 일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절차적 부분에서만 일본의 주장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3년 9월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28개 어종에 내려진 수입금지 조치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초 상소기구의 판정을 앞두고 1심 판결이 대부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막상 일본에 유리하게 판정됐던 핵심쟁점들이 줄줄이 파기됐다.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취한 50여개국 중 한국만을 2015년 5월 WTO에 제소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요소가 있었는데 놓치지 않고 적절한 주장을 한 것이 좋은 결과를 냈다”며 “수산물 전체의 신뢰가 약해질 수 있고 국민들의 우려도 많았는데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예상 밖의 극적 반전이었다. 1년 전만 해도 세계무역기구(WTO)는 “특정 상품 수입을 왜 금지하는지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가 부당하다고 못 박았다. 정부가 곧바로 상소했지만 WTO에서 1심 판결이 뒤집힌 전례가 드물어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도 “이미 끝난 싸움인데 책임을 미루려 시간만 끌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판결이 달라진 것은 ‘후쿠시마 지역의 환경오염이 수산물에 명백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리 정부가 구체적인 데이터로 증명한 덕분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후쿠시마 수산물이 밥상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지울 수 있게 됐다. 다만 일본이 수입재개를 벼르던 터라 또 다른 형태의 무역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WTO는 11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것은 협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최종 판정했다. 한국은 지난 2011년 원전사고 직후 후쿠시마 인근 농수산물에 적용했던 수입금지 조치를 2013년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본 8개 현의 28가지 수산물로 확대 적용한 바 있다. 일본은 이 가운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반발해 2015년 WTO에 제소했고 WTO는 지난해 공개한 1심에서 해당 조치가 협정에 어긋난다며 일본 손을 들어줬다.
당초 정부 안팎에서는 우리 측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WTO가 1심 판결 당시 한국의 포괄적 수입규제 조치가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 협정)’에 위배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SPS는 과학적 증명 없이 식품안전을 이유로 수입을 금지하면 WTO가 당사국 정부의 조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생과 관련된 SPS 분야의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WTO는 과학적 근거의 초점을 ‘상품’에 우선 맞춘다. 수산물 수입을 막으려면 해당 수산물 자체가 위험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1심 판결 전까지 ‘현지 환경’을 문제 삼아 수산물의 위험성을 간접 증명해왔다. 2013년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사태가 불거지고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 유출을 인정한 만큼 해당 지역의 수산물 수입 규제는 정당하다는 것이 우리 측 논리였다. 통상 전문가들은 “우리가 후쿠시마 지역의 흙이나 물을 사오는 게 아닌 만큼 환경영향평가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라며 결과를 비관했었다.
1심 판결 이후 1년여의 기간에 부족한 근거를 채우기 위한 정부의 총력대응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대형 원전사고 발생 지역의 환경적 특수성이 식품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자료를 검토한 WTO는 해당 지역의 환경오염이 실질적으로 상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로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13년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28개 어종의 수산물에 대해 내려진 수입금지 조처는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황정원·김우보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