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남수단 정부와 반군 지도자들을 교황청으로 초청해 이들의 발에 엎드려 입을 맞추는 파격을 보여줬다.
11일 오후(현지시간) 교황은 교황 처소가 있는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남수단 정부 지도자들에게 전날부터 이틀간 진행한 영적 피정 행사를 마무리짓는 연설을 하며 “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라”고 호소했다.
또 교황은 “평화를 계속 유지하길, 앞으로 나아가길 형제로서 간청한다”며 “많은 어려움이 있을 터이지만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어 “여러분 사이에서 갈등과 의견 충돌이 있겠지만, 이를 여러분 사이에서만, 즉 사무실 안에만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잡으라”며 “그러면 여러분들은 남수단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이런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남수단 지도자들의 앞으로 가더니,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키르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 3명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동에 남수단 지도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행사를 생중계한 TV를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던 교황청 기자실에서는 ‘아’ 하는 장탄식 내지는 탄성이 터졌다. 교황이 무릎 관절에 지병을 앓고 있는데다 정치인들에게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는 낮은 모습을 보인 것은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교황의 이런 파격에는 이날 남수단과 국경을 맞댄 수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가뜩이나 불안한 남수단의 평화협정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염려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도가 1,200만명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수단은 2011년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서 독립한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2013년 말 키르 대통령 지지자와 마차르 전 부통령의 추종자 사이에 교전이 벌어진 이래 5년 동안 약 40만 명이 숨지고, 수백만 명이 터전을 잃는 참혹한 내전의 수렁에 빠졌다.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은 작년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내달까지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과거 남수단 정부와 반군이 여러 차례 평화협정을 맺었다가 파기한 전례가 있는 까닭에 국제사회는 이번 평화협정을 계기로 남수단에 평화가 완전히 정착될 수 있을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