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멕시코·중국에 이어 미국이 벌이는 무역전쟁의 다음 타깃으로 거론됐던 일본이 마침내 미국 협상단과 마주한다. 5월 새 일왕 즉위, 7월 참의원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서는 이번 협상에 방어적으로 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무역 불균형을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담당상이 15~1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무역협상을 벌인다며 이번 협상에서는 환율이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14일 보도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무역협상을 이틀 앞두고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일본을 압박했다. 워싱턴DC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므누신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협정문에 환율조작 금지 조항을 넣겠다”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대체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해 말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폭탄을 퍼부은 끝에 협정국이 경쟁적 환율 평가절하를 삼가고 외환시장 개입 명세를 매달 공개한다는 내용이 담긴 USMCA 협정문을 도출한 바 있다. 또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협상 합의문에 중국의 환율조작 시 페널티 부과 방안을 넣는 것을 추진하는 등 최근 환율 문제에서 강경한 자세를 보여왔다.
일본 언론은 무역합의문에 환율조작 금지 조항을 넣는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이는 엔저 기반의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USTR은 지난해 12월 “미일 무역협정 협상의 목적은 일본이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얻기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니혼게이자이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통상협정에 환율 조항이 포함되면 일본 금융당국의 개입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과의 상품무역에서 해마다 60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는 일본은 지난 2년간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피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자동차에까지 세금을 부과하려 하자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미일협정이 상품에 국한된 ‘물품무역협정(TAG)’이라고 주장해온 일본은 이번 협상에서 논의 대상을 정하는 수준에서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달 26~27일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예상 밖의 무역 문제를 꺼내지 않도록 사전작업을 해놓겠다는 것이다. 앞서 모테기 경제재생담당상은 9일 총리관저에서 “지난해 9월 미일 정상이 합의한 성명에 따라 협상을 진행하겠다. 상품무역을 중심으로 논의 대상을 결정할 것”이라며 공동성명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협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반드시 시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일본의 의도대로 협상이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일본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일본·유럽연합(EU) 경제연대협정(EPA)과 동등하거나 더 유리한 관세를 미국산 농산물 등에 적용하라고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미 자동차 업계가 일본산 자동차 수입 상한을 이미 제안한 만큼 이 부분에서 불리한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아베 총리가 올 상반기에만도 트럼프 대통령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일본이 이번 협상을 불리한 조건에서 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국빈 방문하고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 때도 회담이 예정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