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포항 지진, 강원 산불을 거치며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 의식은 급격히 높아졌다. 그러나 정부 정책과 현실의 변화는 기대보다 더뎠다. 전문가들은 재난안전과 관련한 정부와 국민 간 인식 차를 줄이려면 ‘공급자’인 정부 역할 못지 않게 ‘수요자’인 국민의 변화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민적 차원에서 안전 의식이 높아진 점을 긍정적으로 꼽았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세월호 사고 이전만 하더라도 안전은 특정 부처나 특정인이 지킨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며 “세월호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에 대한 요구 수준이 향상되고 사회 전체의 책임이란 의식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강원 산불의 신속한 진화에서 보듯 범정부 차원의 안전 문제 해결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헬리콥터 41대를 투입하고 800대가 넘는 소방차를 일거에 동원하는 일은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었다”며 “안전 문제가 아닌 단순히 강원도 지역 문제로 봤다면 피해는 더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안전 문제를 정부 책임으로 돌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른바 ‘의도적인 안전 불감증’이 국민 사이에 만연하다면 안전 문제로 인한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우리 국민들은 역동적인 삶을 살다 보니까 자신은 안전 사고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의도적인 안전 불감증’이 있다”며 “이는 곧 스스로 안전을 챙기는데 소홀한 모습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행기나 선박 탑승 시 구명조끼 착용법 등 응급상황 대처 안내에 무관심한 승객들 모습을 그 예로 들었다.
안전 문제를 정부 책임으로 돌릴 경우 관리자와 매뉴얼만 양산되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조 교수는 “세월호 전 5,300여개이던 안전 관련 매뉴얼이 최근에는 8,600개까지 늘었다”며 “이를 다루는 행정 공무원만 증가하는데 막상 국민 목숨을 살리는 건 경찰과 소방관 등 현장 공무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못지 않게 국민들의 역할도 강조했다. 재난 현장에서 피해를 입는 당사자인 만큼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본인 안전은 스스로 지키는 게 기본”이라며 “정부는 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진·화재 등 위험 상황 행동요령을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도 “세계 어떤 나라도 자연 재해에 대해 정부가 100% 책임지는 곳은 없다”며 “다만 생존법 교육을 초등학교서부터 가르쳐 생존율을 높이는데 힘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