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사이언스] 오존에 무방비 노출된 실험실…'제2 가습기살균제 사태' 우려

유해가스제거 장치서 오존 발생

폐렴·천식·시력장애 유발할수도

어린이집·산후조리원서도 사용

"정부, 대책 마련없이 지켜만 봐

라돈 사태 재연될 수 있다"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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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 이날 개막해 19일까지 열리는 제13회 국제연구실험 및 첨단분석장비전(KOREA LAB 2019)을 둘러보니 실험실에 설치하는 일종의 공기청정기인 유해가스제거장치 중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이온클러스터 방식이 눈에 띄었다.

이 제품의 작동원리는 공기 중에 전기를 방전해 산소 분자를 음이온과 양이온으로 쪼갠 후 수분 등과 반응해 나온 부산물이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포집, 제거해 공기를 정화하는 것이라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기를 많이 쓰다 보면 폐 기능 저하 등 문제를 일으키는 유해한 오존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 심하면 폐렴, 천식, 아토피, 두통, 시력 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오존이 살균·탈취 기능이 있기는 하나 효과를 발휘하는 농도가 되면 사람의 호흡기와 눈 등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 기업의 연구개발(R&D) 실험실 중 오존이 나오는 유해가스제거장치를 쓰는 곳이 적지 않으나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R&D 현장의 허리인 석·박사 과정 학생과 포닥 연구원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환기를 잘 시키는 실험실도 많지만 항온·항습을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별로 환기를 안 시키는 경우도 있어 오존이 배출될 경우 그대로 축적된다. 강력한 산화제인 오존의 특성상 실험실의 다른 유해가스와 반응해 부가적인 독성물질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폭포나 숲 속 등 자연에서 나오는 음이온을 방출한다는 엉터리 소문에다가 필터 교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으로 이온클러스터 방식의 제품이 2010년을 전후해 실험실에 꽤 확산됐다.


물론 해당 업체들은 오존주의보(1시간 평균 오존 농도가 0.12ppm 이상)에 훨씬 못 미치는 오존이 나온다는 입장이나 실내에 오존이 축적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10분 가동하고 20~30분은 중지하게끔 타이머를 설치하기도 하는 게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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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05년부터 ‘연구실 안전관리비’를 인건비의 2% 이내에서 쓰도록 신설하고 지난해 4월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도 공포했으나 실험실 유해가스 제거에 관한 종합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시절인 2013년 국립대학의 실험실 안전장비 구축에 1,500억원가량을 편성했으나 이 부분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교육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 등 누구 하나 챙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의 경우 다중이용시설의 실내 공기 질 관리를 하며 오존이 1시간 동안 0.06ppm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규제했으나 실험실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안전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공대 교수는 “실험실에서 비린내가 나 원인을 찾아보니 오존이 나오는 유해가스제거 장치였다. 바로 기존 필터 방식으로 바꿨다”며 “화학과 교수 등은 경각심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연구실에서는 둔감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필터 방식은 정전기의 힘으로 미세 입자와 바이러스·곰팡이 등을 걸러 주거나 유해가스를 활성탄의 기공에 흡착해 제거하는 원리로 오존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필터 방식을 쓰는 실험실도 집진된 유해물질을 폐기물처리업체에 넘기지 않고 대기로 방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험실 외에도 이온클러스터 방식 공기청정기는 차량이나 어린이집, 심지어 산후조리원에서도 여전히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조차 이 방식으로 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양전하든 음전하든 이온은 전하를 갖고 있어 클러스터(뭉치)가 될 수 없어 이온클러스터라는 말이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며 “오존주의보가 발령되는 0.12ppm이 되더라도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못 느끼는데 냄새가 날 정도면 심각하게 해로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음이온에 대한 환상을 못 버리면 오존에 노출된다. 자칫 제2의 가습기살균제나 라돈 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나서지 않고 있다”고 경고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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