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미선 임명 강행] 위헌정족수 6명 진보로 채워... 사형제·국보법 폐지되나

■좌측 깜빡이 켠 헌재

軍동성애·위안부 합의 등

빅이슈 전향 판결 잇따를듯

2023년까지 현체제 유지

"정권따라 헌재 성향 바뀌고

여론 휩쓸릴 땐 혼란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결국 강행하면서 6기 헌법재판소의 방향도 진보 지향으로 확실하게 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더불어민주당이 지명한 헌법재판관 수가 위헌정족수(6명)에 도달하면서 현 정부 국정철학과 배치되는 어떤 사건이라도 기존 관념을 뒤집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사회적으로 찬반 여론이 첨예한 사건들에 대해 과거와 정반대의 쏠림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의 임기는 최소 2023년까지 보장돼 있어 적어도 다음 정부 초중반까지 현 헌재의 스탠스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헌재 승선으로 비교적 진보 성향을 갖춘 재판관이 전체 9명 가운데 6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진단했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였던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이석태 재판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출신으로 사상 처음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헌법재판관으로 도약한 김기영 재판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 재판관, 국제인권법연구회 발기인 출신 40대 여성 노동법 전문가 이미선 재판관 등 5명은 뚜렷한 진보 인사로 분류된다. 여기에 이은애 재판관도 호남 출신의 여성인데다 이제껏 정부 국정철학에 반하는 판단을 내놓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보 성향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대세다.

진보 인사가 4명에서 6명으로 늘어난 것은 헌재 안에서는 대단히 큰 변화다. 기존 법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하는 데는 4명의 동의만 있으면 되지만 이를 위헌으로 뒤집을 때는 정족수가 6명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성향의 재판관이 6명 이상이 될 경우 어떤 사건이라도 자유자재로 합헌·위헌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셈이다.


나머지 3명의 재판관 가운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선애 재판관과 바른미래당 지명의 이영진 재판관 등 2명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명으로 헌재에 입성한 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있을 때만 해도 진보·보수성향 재판관들이 각각 4명, 3명씩 포진돼 있어 이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새로 임명되면서 이들의 판단이 갖는 무게감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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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지명으로 지난해 헌재에 입성한 이종석 재판관은 유일한 보수 인사로 남게 됐다. 이 재판관은 지난 11일 낙태죄 위헌 선고 당시에도 조용호 재판관과 함께 “우리 모두 태아였다”로 시작하는 반대의견을 내 주목을 받았다.



헌재가 중도 성향 재판관들의 도움 없이도 전향적 판단을 내놓을 구성을 갖추게 되면서 남은 심판 대상 사건들에 대한 결론도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10년과 2016년 각각 합헌 결정이 내려졌던 사형제와 군 동성애 처벌 조항이 위헌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사형제의 경우 유남석 헌재소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폐지 입장을 밝혔고 문형배 재판관은 “종신제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군대에서 동성과 합의하에 항문성교를 해도 처벌하게 한 군형법 관련 사건은 이석태 재판관이 변호사 시절 아예 대리인 단장을 맡았던 사건이다. 그는 민변 회장 시절 국보법 완전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 사드(THAAD) 배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현대차 노조업무 방해, 세월호 당시 대통령 행적 기록 공개 등에 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제청 사건들도 결론 짐작이 한층 쉬워졌다는 분석이다.

현 헌재 구성은 차기 정부 초중반까지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될 전망이다. 진보 성향 재판관 가운데 70세 정년 문제로 가장 먼저 떠나는 이석태 재판관의 퇴임일이 오는 2023년 4월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보 성향 재판관을 또 지명할 경우 차기 대통령 지명 몫인 유남석 헌재소장이 퇴임하는 2023년 11월까지 진보 우세 상황은 더 이어질 수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처럼 정권에 따라 헌재의 성향이 크게 바뀌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만 한동안 헌재가 보수 일변도의 방향으로 달려온 만큼 앞으로의 헌재가 얼마나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사형제, 군 동성애 사건 등에 대해) 아무래도 예전과 좀 다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며 “국민 여론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여론에 휩쓸리는 판결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정권이 임명한다고 해서 그쪽 이념을 무턱대고 좇으면 안되고 국가의 현재와 장래를 성찰해 판단해야 한다”며 “9명 중 8명이 판사 출신인 점도 다양성 측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간통죄·낙태죄 폐지 등 헌재의 판단에는 시대 상황과 사회적 변화가 반영된다고 봐야 한다”며 “그동안 보수가 다수였던 스탠스에서 진보가 많아지기는 하겠지만 헌재가 균형을 찾아간다는 관점으로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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