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초고가 TV 한 대 가격이 강남 최고급 아파트 한 평당 분양가 정도면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다고 보고 가격을 책정하기도 했습니다.”
가전업계 한 고위 임원의 말이다. 실제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의 초고가 TV 가격은 강남 아파트 가격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다. 아파트 시장의 급락에 따라 초고가 TV 가격과 아파트 한 평당 가격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할 때도 있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지난해 강남 3구(서초구·강남구·송파구)의 아파트 한 평당 평균 분양가는 3,071만~4,728만원선(부동산114 기준)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내놓은 최고가 TV인 85인치 8K QLED 가격은 2,590만원, LG전자의 77인치 LG 시그니처 올레드 TV는 2,400만원이었다. 초고가 TV 가격이 조금 낮기는 해도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몇 년을 거슬러도 이런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2015~2017년 3년간 강남 3구의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00만~4,300만원 사이에서 정해졌는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내놓은 초고가 TV 가격은 3,300만~4,1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관행이 깨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훌쩍 뛰어넘는 최대 1억원에 달하는 초고가 TV를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 평당 분양가의 3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지난 22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오는 5월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가격을 공개할 예정인 98인치 QLED 8K TV는 해외에서 먼저 가격이 공개됐는데 1억원에 달하는 고가로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98인치 QLED 8K TV의 가격은 9만9,999달러로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삼성전자가 기존에 내놓은 고가 TV를 크게 웃도는 가격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3년에도 110인치 TV를 1억원 이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기보다는 기술 과시용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소비자들의 초대형 TV 선호 추세에 발맞춰 판매를 목적으로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이렇게 높게 책정된 것은 80인치대에서 90인치대로 넘어가는 제품이라 원가 차이가 크게 나고 제품이 소량으로 제작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국내 출시가가 미국법인 홈페이지에 공개된 것처럼 높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격은 아직 조정 단계”라며 “국내 출시 가격은 1억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98인치 QLED 8K TV 가격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 중 하나는 LG전자도 올 하반기에 초고가 TV인 롤러블 올레드 TV를 출시할 예정이 있어서다. 98인치 QLED TV나 롤러블 올레드 TV 모두 초부유층을 타깃으로 하는 제품이다. 그런 만큼 삼성전자의 가격 책정이 LG전자의 가격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롤러블 올레드 TV의 가격을 5,000만~1억원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롤러블 디스플레이의 원가 등을 고려한 예상가다.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기준 롤러블 디스플레이의 패널가는 3,029달러로 올레드 디스플레이(868달러)에 비해 3배 이상 비싸다. 일각에서는 LG전자가 롤러블 올레드 TV 대중화를 위해 파격적인 수준으로 가격을 낮출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아직 가격을 예상하기는 시기상조다. LG전자도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며 “내부 협의는 물론 유통사와의 조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전 명가들이 초고가·초대형 TV를 출시하는 것은 그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인치대별 TV 판매 추이를 살펴보면 70인치대와 80인치대 TV의 판매 성장 속도가 다른 인치대에 비해 더 빠르다.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70인치대 TV 판매 대수는 2014년 99만9,000대 수준에서 지난해 288만6,000대 수준으로 세 배 가까이 성장했다. 같은 기간 80인치대도 15만대 수준에서 33만9,000대 수준에서 두 배 이상 커졌다. 전체 TV 판매에서 70~80인치대 TV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0.48% 수준에서 지난해 1.45%로 3배 가까이 커졌다.
여기에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히려는 목적도 있다. 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고가 TV가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브랜드 이미지에는 큰 영향을 준다”며 “첨단 기술을 집대성한 제품인 만큼 선도 업체라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고 다른 제품들로의 낙수효과도 기대할 만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