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공기업 '황당 임피제' 뒤에 정부 있었다

임금 준 만큼 근로시간 줄이도록

기재부 '임피제 운영 변경안' 보내

"勞 등쌀에 밀린 갈지자 정책" 비판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에 대한 근로시간 대폭 축소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결국 정부가 길을 터줬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강경한 노조의 등쌀에 정부가 스스로 도입 취지를 깨뜨리면서 ‘황당한’ 임피제를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5일 본지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12일 각 부처에 공문을 보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관련 제도운영 변경사항’을 전달했다. 공공기관 노조가 “임피제 지침을 폐기하라”며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앞에서 릴레이 농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나온 조치다. 지난해 말로 임피 지원금 제도가 종료되면서 공공기관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자 정부가 이를 달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공문에는 “당초 임피제로 임금이 축소되는 만큼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없도록 했으나 이를 완화해 노사합의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명시돼 있다. 기재부는 임피제 도입으로 절감되는 임금을 신규 채용에 충당할 수 있는 만큼 기본원칙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지침이 전해지자 한국가스공사·코레일 등 대다수 공공기관은 올해 임피제 대상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단체협약을 바꾸고 있다. 통상 주 40시간 근무에서 16시간을 줄여 주 3일(주 24시간) 일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앞으로 임금이 조정되면 이에 비례해 근무시간을 조정한다는 문구도 넣었다. 결국 공공기관 노조가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이는 민간기업과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임금이 줄면서 노동시간까지 덩달아 단축돼 생산성이 오히려 악화할 소지도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노사 간 자율합의가 있다면 임금 삭감률 이내에서 근무시간 단축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라며 “직원들 사이에서 임금만 깎이는 데 대한 불만이 나와 애로사항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 개편 ‘勞使자율’이라더니…되레 방만경영 부추겨

■‘황당 임피제’ 뒤에 정부 있었다

‘임금피크제 지원금’ 폐지되자

勞 눈치에 근로단축지원금 전환

별도 정원의 청년 신규채용도

3분의 1로 대폭 줄여 인력 부족


정부가 기존 입장을 뒤집어 임금피크제 대상 공공기관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도록 허용한 건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데 따른 불만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55세 이후 임금이 10% 이상 감액된 근로자에게 1인당 연간 1,080만원 한도로 지급하는 ‘임피제 지원금’이 지난해 말로 종료됨에 따라 공공기관의 대상자들이 근로시간을 줄여 ‘장년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제도로 전환하도록 길을 터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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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본지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지원금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년 947명(36억원), 2017년 1,844명(96억원)에서 2018년에는 3,386명(278억원)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이 같은 지원이 끊긴 탓에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졌다. 반면 장년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은 공공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어 지난해 민간에서만 849명에게 26억원이 투입됐다. 이 제도는 만50세 이상 근로자가 주32시간 이하로 근무시간을 줄였을 때 삭감된 임금의 2분의1을 연간 1,080만원 한도 내에서 최대 2년간 지급한다.

이처럼 기획재정부가 임피 지원금을 폐지하고 나서 임피 운영을 변경해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으로 임금 보전을 시켜준 건 지나치게 노조 눈치를 봤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용인해줌에 따라 모든 기관들이 너나 없이 제도 개편을 시도하게 됐고, 노사 자율이라는 명분 속에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직무급제 전환도 노동계의 반발로 사실상 제동이 걸려 있어 공공기관의 노동시장 개혁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 임피 대상자들은 통상 임피 1년차 또는 2년차 까지는 근무시간에 변동이 없이 현업 부서에서 일해왔는데 주3일 또는 주4일 근무를 하게 되면 일부 교대 근무를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업무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규 인력 수요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또 마지막 해에는 아예 주 보직에서 제외되고 별도 직군으로 빠져 사실상 잉여 인력이 되는 실정이다. 익명의 한 전문가는 “공공기관 중 임피제 적용 대상자가 일할 수 있는 적합 업무를 개발하지 못한 곳은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상위 직급은 만 59세, 하위 직급은 만58세부터 임금피크제에 돌입한다. 해당 직원들은 임피 마지막 해에 임금이 35% 줄어들고 이에 비례해 근무시간도 단축된다. 보직 역시 전문위원이라는 별도 직군으로 변경된다. 한국전력공사도 임피 마지막 해에는 아예 임피제 인원만 모아놓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자기개발과 퇴직 준비라는 명목으로 1년간 업무를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년 이후 생활 등을 위한 교양교육,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한 전직 교육이나 창업 교육 등을 받는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마지막 해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자문 역할이어서 현업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봐야 맞다”면서 “책임자급은 근무시간을 단축하면 부서 운용 자체가 어려워져 아직 변경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공기관 임피 도입을 통해 일반 채용과 별도의 정원으로 청년 신규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계획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총 인건비에 포함되지 않고 절감된 재원을 통한 채용인원은 2016년 4,282명, 2017년 3,529명에서 2018년에는 1,386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60세 정년연장 과정에서 연착륙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유명무실해 지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년 신규채용을 위해 임피제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오는 9월말 나오는 임피제 실태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세종=황정원·정순구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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