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항상 타인과 연결돼 있다. 휴대폰과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다른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고 그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줄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깊은 대화보다는 가볍거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대화들만 넘쳐난다. ‘유럽의 지성’으로 꼽히는 시어도어 젤딘은 “개인들의 만남이야말로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영혼을 나누는 대화라는 것이다.
책은 젤딘이 BBC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끝난 뒤 ‘대화는 어떻게 우리 삶을 바꾸는가’를 주제로 진행된 20분짜리 강연을 옮긴 것이다. 그의 강연을 듣다가 직장에 지각했다는 사연이 전해질 정도로 청취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강연은 책으로 탄생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성 안토니 칼리지의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낯선 사람들 간의 지적인 교류를 돕는 비영리단체 ‘옥스퍼드 뮤즈 재단’을 이끌고 있다. 고독·공포·호기심·사랑 같은 감정의 영역들을 탐구해 인류의 역사를 고찰한 전작 ‘인간의 내밀한 역사’로도 이름을 알렸다.
저자는 ‘대화는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가’, ‘새로운 사랑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 ‘기술은 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등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진정한 대화는 무엇이고 대화가 어떻게 나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15세기 궁정인들이 남긴 대화에서부터 세 살짜리 아이의 철학적 질문, 영화·소설·드라마 속 인물들의 대사까지 다양한 삶과 기록을 넘나든다.
저자는 생각의 경직을 막고 가치 있는 지식을 나누기 위해 우리에게 ‘정신과 정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대화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인지’ 묻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이야기하거나 좋아하는 영화, 가보고 싶은 여행지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한정시킬 때 우리는 새로운 생각과 만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삶에 관한 개인의 진지한 생각을 감추는 연막과 마찬가지다. 대신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들, 일상의 중압감 때문에 마음 뒤편으로 보내버린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지적인 호기심 속에서 서로 존중하는 대화에 몰입할 때 우리는 나와 타인, 나아가 세계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화는 타인을 통해 새롭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흥미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36가지 질문을 소개한다. ‘침묵의 미덕은 무엇인가’ ‘남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당신 대화의 세계지도는 어떤 모양인가’ 등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주제들을 관통한다.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전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 세계적인 석학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모두가 사방의 온갖 갈등에 압도당해 끝도 없는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지요. 누군가는 이 막막한 어둠을 걷어내기 위한 대화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이런 대화를 통해 평등을 이루고 용기를 내고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더 이상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나 권태로 고립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