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의 정년은 법으로 60세로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근로자가 60세에 퇴직하는 것은 아니다. 정년 이전에 명예퇴직을 하기도 하고, 회사사정이나 개인 사정으로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어쨌든 대다수 직장인들은 50대 중반부터 60세 사이에 생애 주된 일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했다고 일을 그만 두는 것은 아니다. 이후 상당기간 동안 몇 차례 더 재취업과 퇴직을 반복을 거듭한다.
때문에 ‘퇴직’과 ‘은퇴’는 다르다. 퇴직이 직장을 떠나는 것이라면 은퇴는 생계를 목적으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고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몇 차례 더 재취업과 퇴직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근로시간과 소득이 차츰 감소한다. 이렇게 보면 직장인의 은퇴는 단절적인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그러면 근로자들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한 다음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전 은퇴에 이르는 것일까? 최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50~60대 퇴직자 1,80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퇴직자 중 83.2%(1,504명)가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을 했다고 한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도 아니다. 재취업자들 중 절반은 새로운 일자리로 옮겼고, 두 번째 재취업자 중에서 다시 절반이 세 번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이렇게 퇴직과 재취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을 차츰 줄어들었다. 퇴직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데 까지 평균 5.1개월이 걸렸고, 재취업 일자리에서 평균 18.5개월이 동안 일했다.
그렇다면 재취업과 퇴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소득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조사대상 오륙십대가 생애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기 직전에 받는 급여는 월평균 426만원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재취업 일자리에서 소득은 월평균 269만원으로 36.9%나 감소했다. 이후 두 번째와 세 번째 일자리에서 월평균소득은 각각 244만원과 230만원으로 감소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재취업 일자리에서 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일자리 속성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89.2%나 됐던 상용직 비율이 첫 번째 재취업 일자리에서는 46.5%로 곤두박질쳤다. 사업장 규모도 줄어들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무자 비율도 31.9%에서 9.9%로 떨어졌고, 고위임직원 및 관리직 비율도 40%에서 21%로 반 토막 났다. 반면 단순노무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3.9%에서 19.5%로 5배나 늘어났다.
이와 같은 소득변화에 적응하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일자리를 이동하는 기간 동안 동안 소득공백에 대배해야 한다. 퇴직후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5.1개월이 소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보다 긴 기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따라서 주된 직장 퇴직을 앞두고 적소 6개월에서 1년치 생활비를 비상예비자금으로 준비해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주된 직장에 재직하는 동안 ‘재정소방훈련’을 해야 한다. 화재를 예방하고 불이 났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소방훈련을 한다. 마찬가지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다음 급격한 소득감소에 대응하려면 퇴직 전부터 ‘재정소방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소방재정훈련’이라는 처음 한 것은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엘리자베스 워런이다. 그녀는 딸과 함께 쓴 책 ‘맞벌이의 함정’에서 맞벌이와 소비자파산 사이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그녀가 진행했던 소비자파산프로젝트에서 파산으로 최악의 재정난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 자녀를 둔 맞벌이부부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좋은 학군 내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갚지 못해 파산했다. 대출을 받을 당시에는 부부 두 사람의 소득에 맞춰 원리금 상환계획을 세웠지만,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실직하면 상환계획이 어그러질 수 밖에 없다. 워런은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맞벌이부부에게 ‘재정소방훈련)’을 실시할 것을 제한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을 못하게 됐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미리 연습해 두라는 것이다.
근로자들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면 재취업을 하더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득이 줄어든다고 해서 생활비까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된 일자리에 재직하는 동안 향후 줄어든 소득에 맞춰 살아가는 재정소방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근로소득 감소분을 금융소득으로 보완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줄어든 소득에 맞춰 소비를 줄인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만 가지고는 기본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면, 금융자산을 활용해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각종연금자산을 활용해 부족한 소득을 보충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일을 해서 벌어들인 소득과 연금소득을 합쳐 노후생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연금겸업(年金兼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