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원전해체산업을 키우기 위한 조건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사장

설계·제조 기술, 해체산업에도 적용

원전건설없이 육성하기 어려워

신한울 3·4호기 매몰보단 건립해야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사장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사장



정부가 원전해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키운다는 기사를 홍보하고 있다. 관련 기업 육성을 위해 5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의 천문학적 규모까지 나열하고 나섰다.

한국은 원전건설 산업에서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원전해체 산업은 후발주자다. 다행히 한국은 연구로1·2호기를 해체하고 완벽하게 환경 복원에 성공한 바 있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원전해체 산업 육성계획이 탈원전정책으로 한국의 원전 산업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해체 시장을 마치 탈원전대책의 대안으로 부상시킬 수 있다는 의도는 경계해야 한다. 해체와 연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은 고리1호기와 동일한 설계가 미국에서는 60년 승인을 받아 운전 중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추세라면 20년 추가 승인을 받아 80년까지 운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만 40년 운전하고 해체의 길을 가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발전소 기기와 장비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안전성이 확인되면 연장 승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미국 등 각국의 법적 기준이다. 에너지 자원도 없고 에너지 공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이 혹시나 정치논리에 말려 나아갈 길이 막히는 것은 아닌지, 어떤 길을 택해야 우리에게 유리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같은 설계인데도 미국은 80년, 한국은 40년 운전하고 해체한다면 원전건설에 들인 막대한 자본을 사장시켜 에너지 가격만 상승시키게 될 것이 자명하다. 해체 시장에 대해서도 정부는 앞으로 원전을 추가 운전 없이 해체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심각한 국부 유출로 봐야 할 것이다. 원전해체 산업이 원전건설 산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국민의 원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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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산업이란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구조물이나 해당 방사성 물질을 제염하는 과정과 오염된 기기 장치를 원격으로 절단하고 최소 부피의 방사성폐기물로 규격화시켜 최종 처분장에 격리해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련의 작업과 부지를 환경에 알맞게 복원하는 사업을 총칭하는 말이다. 고리1호기의 경우 200ℓ짜리 드럼으로 1만5,000드럼의 해체폐기물이 발생해 총 소요비용은 6,000억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7년 영구정지됐기 때문에 사실 향후 7~8년까지는 별로 진행될 사업이 없다. 사용후핵연료의 냉각에 필요한 기간은 보통 10여년이 소요돼 기다려야 한다. 환경 복원이 완벽히 이뤄지기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면 몇 년이 더 필요하다. 연간 사업비용은 400억~500억원 규모로 동일한 신규 원전 건설비용의 10분의1도 되지 않는다.

설계·제조·건설 기술이 해체 산업에도 적용돼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 보유국으로 해체 산업에서도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본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300톤 이상 중장물제조 산업과 제철 산업을 보유하고 있어 제염 처리된 철 구조물의 절단과 최소 부피로의 용융작업에 유리하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원전건설 과정이 없는 현재의 정책 아래에서는 원전 산업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 원전이 붕괴한 상태에서 해체 산업을 아무리 육성하려 해도 이미 해체 업체로 정상에 있는 에너지솔루션 등 각국 경쟁사와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원전해체 산업은 원전건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원전기술로 확인된 신한울3·4호기를 매몰할 것이 아니라 건설할 것을 권고한다. 이래야만 1조원 이상의 매몰비용을 국가나 국민이 부담하지 않고 해체 산업 육성의 거대한 기금 확보에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며 원전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질 수 있는 등 다양한 파급효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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