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유출을 막고 한국 기초과학이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면 노력에 대한 평가 기준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체물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은숙 미국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1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국내 기초과학 연구 현주소에 대한 쓴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서 교수는 지난 1997년 11월 미국의 신진 우수연구자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한인 과학자로는 처음으로 받는 등 일찍부터 미국 과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2004년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남극에서 검출기를 띄워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인 우주선을 측정하는 크림(CREAM·Cosmic Ray Energetics And Mass) 프로젝트의 총괄책임자로도 활동하며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서울포럼 2019’ 마지막 날인 16일 세션 ‘칸막이를 허물어라-창의와 소통’에서 젊은 과학자들이 한국을 등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무엇인지, 창의력 육성 등과 관련해 한국 과학교육 시스템에서 보완돼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귀중한 조언을 건넬 예정이다.
30여년 기초과학 연구 외길 인생을 걸어온 서 교수가 강조하는 대목은 ‘과정’과 ‘참을성’이다. 그는 “과학자는 기본적으로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고 문제 푸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며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과정이 곧 연구인데 설령 기대했던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아도 그 과정 자체에서 연구자가 실망·좌절이 아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연구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과학 교육 역시 ‘맞고 틀림’이 아닌 자신의 논리가 지닌 결함을 스스로 찾고 수정하는 과정 자체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난해 고출력 레이저 핵심 기술 개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물리학 교수의 경우 대학원생 시절 낸 첫 논문에서 그 연구가 시작돼 꾸준히 한 우물을 판 결과 빛나는 성과를 얻게 됐다. 생애 첫 연구가 빛을 볼 수 있도록 ‘진득한’ 연구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 교수가 국내 우주선(宇宙線·cosmic ray)연구의 권위자인 박일흥 성균관대 물리학 교수를 천체물리학자로 변신시킨 일화는 과학계에서 유명하다. 언젠가 한국에 온 서 교수가 박 교수에게 “우주선을 검출할 실리콘 검출기를 한국에서 만들 수 있겠냐”고 물었고 박 교수는 “해본 적은 없으나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니 해보겠다”고 답했다. 우주에서 만들어져 지구로 오는 입자의 성분을 밝히는 검출기 1호는 지금도 박 교수의 실험실 벽에 걸려 있다.
기초과학 연구에 있어 ‘기다림의 미학’은 곧 양질의 인력이 나라 밖으로 유출되는 안타까운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2017년 스위스 국제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세계인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인재 경쟁력지수는 100점 만점에 55.82점으로 63개국 중 39위에 머물렀다. 특히 ‘두뇌 유출’ 항목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3.57점으로 최하위권인 54위를 기록했다. 국내 우수 인재들이 외국 대학과 기업으로 떠나는 ‘두뇌 유출’ 현상이 매우 심각함을 드러내는 수치이다. 서 교수는 “유동성이 많은 세계화 시대에 한국 기초과학이 국제 경쟁력을 기르지 않으면 인재 유출현상은 막을 수 없다”며 “(여기서 말하는 경쟁력이란 결국)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과감히 투자하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1971년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 △1991년 루이지애나대 물리학 박사 △메릴랜드대 물리학과 교수 △1997년 미국 신진 우수연구원상 △2006년 NASA그룹 업적상 △2010년 미 물리학회 회원 △2017년 한미경제연구소 올해의 미주한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