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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좌초 위기에 빠진 ESS 산업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탄소문화원장)

이덕환 서강대 교수이덕환 서강대 교수



정부가 탈원전의 대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신재생 확대 정책에 빨간불이 켜졌다.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들은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에 떠밀려 파산 직전이고 고속 성장의 꿈을 키우던 에너지저장장치(ESS) 업체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사고로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석탄 기술은 스스로 내던져버리고 풍력·태양광·액화천연가스(LNG)를 모두 외국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전기는 저장이 쉽지 않다는 고약한 특성이 있다. 발전기를 돌려 생산한 전기를 실시간으로 전량 소비해야만 한다. 장작·숯·석탄·석유처럼 미리 충분한 양을 비축해놓을 수가 없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개발된 게 대규모 송전망으로 전국의 모든 발전소와 소비자가 하나의 송전망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고 실시간으로 소비한다.


한국전력공사가 전국을 연결하는 송전망을 관리한다. 매일 시간대별 전력 수요를 전망해 전국 발전사들에 전력 공급을 요청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던 지난해 7월24일에는 역사상 최대인 99.6GW를 공급하고 92.5GW를 소비했다. 평일 야간에도 송전망에 50GW 수준의 전기를 공급한다. 혹시라도 공급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면 발전기에 과부하가 걸려서 송전망 전체가 마비되는 대정전(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전기를 저장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시동 모터 작동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해주던 납축전지가 가장 오래된 ESS다. 엔진의 힘으로 돌아가는 작은 발전기(제너레이터)에서 생산한 전기를 납축전지에 저장해둔다. 납축전지로 정밀 전자기기를 보호하기 위한 무정전전원장치(UPS)를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납축전지의 대형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충·방전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도 심각하다.


송전망과 연결할 수 있는 정도의 대규모 ESS의 원조는 지난 189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음 상업화한 양수(揚水)발전소다. 전기가 남는 야간에 전기 펌프를 이용해 하부 댐에 있는 물을 상부 댐으로 퍼 올리고 전기가 필요한 주간에 상부 댐의 물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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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고리 원전 1호기를 완공하고 난 1980년대부터 양수발전소를 건설해 현재 16기를 ESS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양수발전소 건설에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고 환경파괴 문제도 심각한 걸림돌이다. 정부가 3기의 양수발전소 추가 건설을 시도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ESS는 휴대폰·전기자동차에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형화시켜서 이용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주로 대형 UPS가 필요하거나 심야전기의 할인 혜택을 원하는 기업들이 제한적으로 사용하던 기술이다.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그런 ESS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하루 평균 가동시간이 3시간30분에 불과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수단이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한 셈이다. 우리 대기업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됐다. 실제로 2016년 66개소가 설치됐던 ESS가 2017년에는 265개소, 2018년에는 782개소로 급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ESS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다.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형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명·안전성·효율에 대한 완벽하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가정용 단독주택을 짓는 기술로 초대형 건물을 짓겠다고 섣부르게 나서는 것은 엔지니어의 자세가 아니다. 진정한 ESS에는 상온 초전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과학적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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