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文정부 출범 2년]"투자부진, 대외여건 아닌 정책 불확실성 탓…기업 힐링 필요"

■이인실 경제학회장 특별인터뷰

원하는 지표 골라보며 현실 회피

소주성만 고집·경제철학은 빈곤

올 성장률 2%대 초중반도 어려워

걸핏하면 기업 범죄자 취급 문제

정부는 시장 불확실성 줄여줘야

숲 보는 '경제 리더십' 보여줄때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인터뷰./성형주기자



문재인 정부가 오는 10일 출범한 지 2년을 채운다. 이제 운동경기로 치면 후반전에 들어간다. 국민들은 더욱 얇아진 지갑에 거친 한숨을 토해내고 있고 기업들은 속절없이 떨어지는 실적에 허덕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정부지출만 쏟아진다.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은 ‘현금복지’ 뿐이라는 장탄식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서강대 경제학과 연구실에서 이인실 경제학회장을 만났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평가는 혹독했고 신랄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 없는 경제정책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고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컸다. 1·4분기 경제성장률(GDP)이 10여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을 두고 청와대가 대외여건 탓으로 돌린 데 대해 “투자부진 등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것은 결코 대외여건 때문이 아니다”라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기업을 힐링시키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12배나 큰 미국은 1·4분기 GDP 성장률이 3.2%(연율 기준)를 나타냈다. 주요 2개국(G2) 자리를 꿰차고 경제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도 6% 중반대의 성장률을 자신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2.6~2.7% 성장을 얘기하고 있지만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2% 달성도 힘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은 “정부가 저조한 경제성적에 대해 잘못된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눈깔사탕을 주는 것과 똑같다”고 표현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심어주는 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충고다. 그는 “정부가 어려운 건 어렵다고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함께 헤쳐나가자고 호소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마이너스 성장을 불러온 투자부진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기업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이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정책 수정을 통해 꼭 경제를 살려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수차례 언급했다.

-오는 10일 출범 2주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해달라.

△쓴소리로 들리겠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딱히 꼽을 만한 정책이 없다고 본다. 경제정책의 큰 그림이나 비전이 없고 사회정책에 너무 치우쳐 있다. 국가가 일자리·소득 등 국민 개인의 경제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의 시그니처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전체적인 밑그림 없이 미시적인 정책만 너무 부각하다 보니 소모적인 논란만 양산됐다. 소득주도 성장 이론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현실에서 작동해야 하는데 전혀 실효적인 성과를 못 내고 있다. 그나마 성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규제 샌드박스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 회장은 경제정책의 가장 큰 결점으로 ‘철학 빈곤’을 꼽았다.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 정책을 세워 실천해야 하는데 기업보다는 노조에 편향된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 성과가 미미하다. 정부가 왜 계속 고집한다고 보나.

△진영 논리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은 실효성 있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수출을 해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과 금융에 대한 경제철학이 빈곤한 것은 정말 큰 문제다. 궤도 수정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면 독재정권하에서도 상황이 변하면 얼마든지 계획을 수정했다. 그건 잘못된 것도, 창피한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아니라고 하면 바꿔야 하는 게 옳은 것 아닌가.

이 회장은 문 대통령을 보필하는 청와대 참모들이 이념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똑같은 경제지표를 갖고 정부가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피력했다.


-올해 1·4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정부가 얘기하는 대로 올해 2.6% 성장률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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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된 일이다. 연초 수출·투자·소비가 모두 부진했고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기록적으로 최장 기간 하락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과도한 경기침체의 공포도 경계해야 하지만 경제가 크게 반등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올해 성장률은 2%대 초중반을 지키기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의욕적인 기업을 요즘에는 보기가 힘들다.

-기업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어디로 튈지 기업들이 불안해한다.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다. 시장가격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과도하다. 카드수수료까지 정해주고 가맹점 원가를 공개하라고 하면 기업이 움직이겠나. 걸핏하면 기업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도 큰 문제다. 기업들이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았다. 기업에 대한 힐링이 필요하다. 투자부진 원인 중 하나로 미중 통상갈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등 대외여건 악화도 거론되지만 그 불확실성의 영향을 줄여주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전통 주력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산업발전을 끌고 나가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우리 제조업 경쟁력 약화의 원인 중 하나는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고용을 위해서였지만 정부가 문 닫을 기업에 자금을 대주면서 고부가가치 활동으로의 전환을 늦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산업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기되 낙오되는 사람들을 사회안전망으로 지원하면 된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꾸 원하는 지표만 골라보면서 맞닥뜨린 경제 현실을 회피하면 안 된다. 국민들에게도 어려운 건 어렵다고 대놓고 얘기해야 한다. 지금 미국·중국이 단기적으로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는 있다지만 전 세계적으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노력하자고 진정성 있게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자꾸 재정지출로 때울 수 있다고 하니 국민들은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이 회장은 과거 사례를 소환했다. 외환위기가 닥쳐온 지난 1998년 1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전에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 “실업자가 더 늘어나고, 물가는 더 오르고, 부도나는 기업이 더 많이 생겨 우리 모두에게 무서운 시련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20일 전까지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했던 이전 정부와는 정반대의 고백이었다. 대통령이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국민도 금 모으기 운동을 시작으로 위기극복에 동참했다.

-청와대와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국민들의 기대 수준을 맞추는 데 급급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경제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지금은 경제·정치·문화·기술 등 사회의 모든 부문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 저임금 노동은 자동화나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산업과 노동의 미래에 대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들은 산업·노동의 패러다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 독일이 2015년부터 노동의 디지털화에 대비해 낸 ‘노동4.0’ 녹서·백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최저임금 인상처럼 부차적인 문제만 갖고 싸우면서 그런 시도조차 안 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정리=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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