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속초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여를 앞둔 지난 2일 강원도 속초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속초연수원에서 만난 이재민 A씨는 10년 넘게 살던 집을 잃은 허망함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다섯 아이와 함께 살던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이 흔적도 없이 불탄 후 그는 이전에 없던 당뇨와 고지혈증, 우울증 증세에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다. LH연수원 로비에서 만난 A씨는 “재산 피해는 2억8,600만원 정도로 나왔고 차량도 모두 불탔다”며 “잃은 재산보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던 정원과 함께 추억도 다 사라졌다는 게 가장 아프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A씨처럼 지난 강원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은 566세대다. 이들 대부분은 속초 LH연수원·농협·서울시공무원연수원 등 5개 시설에서 새집을 찾아 떠나기 전까지 머물고 있다. 이재민들은 연수원에 잠시 머물며 안정감은 없어도 다행히 연수원 시설과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산불로 집이 전소돼 서울시공무원연수원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는 B씨는 “공무원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시설이 편리하고 속초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주는 서비스와 구호물품 등으로 잘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1일 강원 산불 피해복구비로 1,853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발표했지만 이재민들은 여전히 가까운 미래가 걱정이다. 되레 현장에서는 피해지원금이 보여주기식 탁상행정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우선 새집을 찾아 전세라도 구해야 하지만 인근에 집이 부족해 쉽지 않다. LH 등에 따르면 이재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집은 100채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LH는 전세자금을 최대 9,000만원까지 융자해주면서 30평이 초과하는 주택일 경우 아예 지원에 제한을 둬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택을 구하지 못할 경우 이재민들은 지자체에서 현재 설치 중인 임시조립주택(컨테이너)으로 이달 말부터 이사를 가야 한다. LH의 한 관계자는 “주로 큰 마당을 끼고 살던 주민들이 갑자기 30평 이하로 집을 구해야 해 적응을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들의 답답함은 더 크다. 그나마 주택은 지원책이 마련된 반면 소상공인 보상책은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에는 국민성금 2,000만원을 주는 지원책만 마련된 상태로 소상공인 개개인의 수억원대 피해를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속초시 용촌리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C씨는 “상점이 모두 타버려 생계유지가 어려운데 소상공인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줄 것인지 들은 게 없어 막막하다”며 참던 눈물을 끝내 흘렸다. C씨는 “거래처들이 모두 끊겨 앞으로 피해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재민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등의 속초·고성 방문도 탐탁지 않다. A씨는 “대통령이 방문해 주민들과 악수 몇 번 하고 금방 돌아가는 건 사실 사진에 찍히려는 보여주기식 행보로 볼 수밖에 없다”며 “각종 복구대책을 마련해준다지만 현장에 와 닿는 건 별로 없어서 더 그렇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차라리 강원도로 내려와 쓴 경호비용을 이재민들을 위해 좀 더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 이재민들을 대변하는 속초·고성산불피해대책위원회는 좀 더 현실적인 복구대책과 지원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와 한국전력 등에 촉구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금을 늘린 보상책을 서둘러 마련해 산불 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전에 구상권을 청구하라는 요구다. 속초시 한국전력 속초지사 앞 농성장에서 만난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가장 상황이 열악한 세입자에게는 국민성금 1,000만원이 전부”라며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 주민들은 여전히 살길을 못 찾고 있는데 정부에서 지원금 조금 주는 걸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한다”고 비판했다.
/속초=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