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식품 압수물을 범죄 증거로 확보했다가 임의로 폐기했다면 발생한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97단독 이백규 판사는 “경찰 수사에서 압수당한 오징어 제품들이 폐기됐다”며 수산물 가공업체 대표 김 모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2013년 부정 식품을 제조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오징어채 150박스, 오징어채 블럭 4개, 오징어 몸살 2개, 오징어 세척수 3개 등을 압수당했다.
경찰은 압수물 중 오징어채 150박스는 폐기하고, 나머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의뢰를 맡긴 뒤 국과수에서 폐기했다.
하지만 김 씨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고, 이후 압수물 폐기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경찰이 압수한 물품의 상실 또는 파손 등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며 “압수한 물품에 대해 몰수 선고가 없을 때는 이를 제출자나 소유자 등에게 환부해야 한다”고 김 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소유자 등 권한 있는 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압수물 보관 자체가 위험하거나 곤란한 것이 아니라면 폐기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오징어에 인산염 등 유해 물질 등이 포함돼 유통이 금지되니 적법하게 폐기 처분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인산염이 포함됐다거나 그것이 인체에 유해할 정도라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일축했다.
다만 국과수에서 폐기한 물건들은 인체 유해 여부를 감정하기 위해 국과수로 보내진 뒤 감정을 마치고 폐기된 것이므로 국가의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법원은 김 씨가 경찰에 구속될 당시 경찰이 관련 내용을 언론에 공표해 정신적인 피해를 당했다며 청구한 손해 배상에 대해서도 원고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