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부 무관심에 흔들리는 科技 생태계...UNIST 화학과 44%↓

■과기대학원 기초과학 지원·등록 현황 보니

광주과기원 등록 24.8% 급감...포스텍도 13.6% 줄어

KAIST도 지원자 3.2% 줄었지만 등록은 소폭 증가

"병역특례제도마저 폐지 수순...누가 진학 꿈꾸겠나"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 채용설명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하고 있다.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 대학원들의 경우 석·박사급 인재들도 취업절벽에 시달리면서 지난해 지원자들이 감소세로 전환해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 채용설명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하고 있다.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 대학원들의 경우 석·박사급 인재들도 취업절벽에 시달리면서 지난해 지원자들이 감소세로 전환해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10% 넘게 줄었다고요? 처음 경험하는 심각한 현상입니다. 현 정부는 ‘탈과학기술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책 변화에 가장 민감한 기초과학 전공 학생들이 본인 분야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도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봅니다.”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학 기초과학 분야 대학원의 ‘인재 실종’ 소식을 전해 들은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예견된 상황”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이공계 석·박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일자리 절벽이 부른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7일 본지가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과기특성화대 기초과학 대학원 중 전년 대비 지원·등록 인원이 동시에 감소한 곳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포항공대(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3곳이다. 이 중 UNIST는 지난해 지원·등록 인원이 각각 175명과 84명으로 전년 대비 21.9%, 31.1% 줄었다. 같은 기간 포스텍은 지원·등록 인원이 10.2%, 13.6% 감소했고 GIST는 9.1%, 24.8% 줄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지원 인원이 3.2% 소폭 감소했지만 등록 인원은 4.5% 증가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기초과학과 공학을 융합전공으로 운영해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유독 낙폭이 큰 UNIST를 기준으로 보면 생명과학과와 화학과 대학원의 지원·등록 인원 감소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생명과학과와 화학과의 등록 인원은 전년 대비 각각 10.1%, 44.1% 감소했다. 지원 인원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수학과 물리학 분야는 연도별로 등락을 거듭했지만 뚜렷한 하락 추세는 보이지 않았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생명과학과와 화학과는 전통적으로 학생이 몰리는 분야였다”며 “이들 학과까지 학생 지원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한국 기초과학의 미래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과학계에서는 두 개의 ‘취업절벽’을 꼽았다. 우선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취업문이 크게 좁아졌다. 기초과학 분야 석·박사 학위자가 가장 선호하는 진로가 정부 출연연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규 연구원을 거의 뽑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정부의 정규직 채용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출연연 25곳이 기간제 노동자 2,08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 교수는 “출연연들이 비정규직을 너무 급작스럽게 정규직화하다 보니 최근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들을 뽑을 여력이 크게 줄었다”며 “가뜩이나 기초과학 전공은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데 그나마 있던 일자리조차 사라지면 누가 대학원 진학을 꿈꾸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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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민간기업으로 진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초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아도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 자연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밟는 신모(32)씨는 “취업 시장이 과거와 180도 달라져 높은 전공 이해도에다 영어 회화는 이제 필수가 됐다”며 “이런 자격을 갖춰도 대부분 계약직이어서 지원하기가 망설여진다”고 한탄했다. 기초과학 인재들이 연구현장에 남도록 유인하는 통로도 막혀가고 있다. 이들이 군에 입대하지 않고 산업현장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병역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전문연구원제도와 산업기능요원제도는 특혜 논란으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히자 기초과학 인재들은 의학·약학전문대학원 진학 등 ‘각자도생’에 나섰다.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일부 의·약전원 편입 등 유출이 여전하다”며 “이에 더해 최근에는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로 이탈하는 인력도 늘었다”고 말했다. 아예 전공을 포기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5대 과기특성화대 대학원 중 전체 모집정원 대비 등록 인원 수가 절반을 겨우 넘는 곳이 세 곳이나 된다. 이는 기초과학뿐 아니라 이공계 전반의 인재 부족 사태를 보여준다. 교수진과 연구환경이 마련됐는데도 양질의 인재가 충원되지 않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박 교수는 “석·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은 학생이자 연구원”이라며 “연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실이 운영되는 셈인데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고 우려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우선 기초과학 석·박사과정 대학원생의 처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일단 이들의 경제적 생활을 지원해 연구현장에 머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연구원 생활만으로도 경제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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