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임대아파트 첫 등장

1972년 개봉동서 대성공했으나...

1972년 서울 개봉동 임대아파트 추첨에 몰려든 인파로 거리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사진제공=LH1972년 서울 개봉동 임대아파트 추첨에 몰려든 인파로 거리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사진제공=LH



지난 1972년 5월9일 서울 개봉동. 아침부터 수천 명의 인파가 북적거렸다. 최초의 임대아파트를 추첨받기 위해서다. 오전9시부터 오후2시까지 접수된 13평형 250세대분의 임대아파트 신청자는 3,339명. 경쟁률이 13.4대1에 이르렀다. 대한주택공사(LH의 전신)는 추첨기에 들어가는 은행알을 ‘넉넉하게’ 3,000개 준비했으나 한참 모자랐다. 추첨번호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곳곳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나빠 경제기획원이 목표성장률 재조정을 고심하던 시기, 개봉동에 인파가 몰린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이 낮았다.


보증금 7만8,000원에 월세는 1층 6,400원, 2층 6,700원, 3층 6,800원, 4층 6,500원, 5층이 6,100원이었다. 시세의 절반 아래여서 무주택자들이 몰렸다. 당초 일반분양용이던 개봉 아파트의 준공일은 1971년 9월. 착공 5개월 만에 완공했으나 텅텅 비었다. 분양가 135만원이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개봉동뿐 아니라 한강 시영아파트 등 주공이 건립한 아파트 900채가 미분양으로 남아돌자 정부는 1972년 3월 임대로 전환하는 단안을 내렸다. 개봉 아파트 임대 전환에 고무된 정부는 10월 준공된 2차분 200가구도 임대로 돌려 경쟁률 6대1의 성공을 거뒀다.

관련기사



목돈 없이도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은 부작용도 낳았다. 요즘과 달리 임대기간이 1년에 불과했으나 입주권에 4만~6만원씩 웃돈을 얹혀 전대(轉貸)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전국 주택보급률이 74.6%, 서울이 54%에 불과한 시절이었으니 편법이 통할 만했다.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개봉동 아파트는 정부의 주택공급에서 임대의 비중이 늘어나는 전환점이었다. LH의 임대주택 누적 공급물량은 112만가구에 이른다.

개봉동 임대아파트 추첨 후 47년이 흐른 오늘날, 주거환경 지표는 과거와 비할 바가 아니다. 진작에 100%를 넘은 전국 주택보급률이 2017년 기준 103.3%, 서울 96.3%에 이르건만 무주택자의 사정은 과연 나아졌을까. 큰 부자들이 ‘개미굴’로 불리는 쪽방을 수십 채씩 운영해 영세민이 받는 정부보조금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현실은 누구 탓인가.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젊은이가 없는 사회의 미래는 어찌 될까.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대놓고 따돌리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고약하다. 같은 단지에서 분양 동과 임대 동 사이에 철조망을 친 동네도 있다. 부끄럽다.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