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키맨’인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입이 열리면서 검찰 수사의 방향이 뇌물 혐의를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김 전 차관이 5년6개월 만에 검찰에 재소환되면서 관련 의혹 규명이 분수령을 맞았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9일 김 전 차관을 소환해 뇌물 및 제3자뇌물죄 혐의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수사단 관계자에 따르면 변호인 2인과 동행한 김 전 차관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일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 관련 수사의 핵심쟁점은 뇌물수수, 성폭력, 외압 행사 세 갈래다. 검찰은 이 중에서도 뇌물수수 여부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윤중천씨가 진술 태도를 바꿔 김 전 차관과 금품거래가 있었다고 시인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검사장이던 지난 2007년 2월께 서울 목동 재개발사업 인허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목동의 부동산을 요구했고 천만원대의 미술품도 받아 챙겼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조사된 부분만 놓고 보면 뇌물죄 혐의 입증이 쉽지는 않다. 뇌물 액수가 1억원이 넘을 경우 공소시효가 15년까지 늘어나지만 실제 부동산 거래가 발생하지 않아 ‘요구’를 입증해야 하는 만큼 진술 외에도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검찰은 부동산 거래 부분보다는 제3자뇌물죄를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윤씨는 “김 전 차관이 2007년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에게 지급한 상가 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는 것을 포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사실이라면 김 전 차관에게 제3자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 같은 시기 고가의 미술품과 금품을 직접 건넸다는 진술도 김 전 차관에게 확인할 중요쟁점이다.
이 경우 윤씨는 뇌물을 공여한 당사자가 되는데 뇌물공여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돼 처벌 대상에서 벗어난다. 검찰은 윤씨를 이미 여섯 차례 불러 조사했고 추가로 소환할 계획이다. 윤씨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김 전 차관의 입장이 정반대여서 대질신문을 해도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수사단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김 전 차관을 수차례 소환 조사하거나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성폭력과 수사 당시 외압 행사 등 관련 의혹을 빠짐없이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 인사들은 증명이 까다로울 것으로 본다. 한 부장검사는 “2013년 수사 당시 별장 성접대를 ‘성폭행’으로 조율한 것이 실책”이라며 “뇌물의 일환으로 향응·금품을 접대받았다는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평했다. 김 전 차관을 처분 직전에 ‘보여주기’식으로 소환하지 않고 신속하게 불러 조사한다는 것은 수사 의지와 함께 수사단이 공개되지 않은 증거를 확보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