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패신저스’는 최첨단 우주선 아발론호가 ‘홈스테드2’라는 식민지 행성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주선에는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한 승객 5,000여 명이 타고 있다. 이들은 ‘지구는 이미 늙고, 병들고, 인구가 넘쳐나고, 온갖 쓰레기로 오염되었습니다. 새롭고 깨끗한 세상에서 당신의 소중한 삶을 제대로 누려 보세요’ 라는 광고 문구에 공감하며 이미 망가질 만큼 망가진 지구를 떠나는 것이다.
여행 소요시간은 120년이다. 이 기간 승객들은 캡슐 안에서 냉동된 채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캡슐이 자동으로 해동되면서 그곳에서의 삶을 누리게 된다. 영화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후의 이야기보다는 사고로 인해 우주선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로 담았지만,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향하는 일은 인류의 필연적인 운명일 수 있다.
미치오 카쿠 미국 뉴욕시립대 물리학과 교수의 신작 ‘인류의 미래’는 영화처럼 지구를 떠나게 되는 인류의 미래를 상세히 그린다. 언젠가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하고 자연은 결국 인간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을 세 가지로 압축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탈출해 살만한 곳을 찾거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멸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먼 훗날 찾아올 재앙이 너무 심해 인류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우주 진출만이 희망이다. 그는 “다른 동물들은 다가올 재앙을 무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인간만은 예외”라며 “우리에게는 운명을 바꿔줄 첨단 과학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재난을 극복한 과거 사례들을 돌아보며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는 단계를 3부로 나눠 살펴본다. 먼저 달에 영구기지를 세우고 화성을 식민지로 개발하는 방법을 논하고, 더 나아가 태양계를 벗어나 가까운 별을 탐험하는 시대로 미리 가본다. 마지막으로는 외계의 별로 진출한 인류가 낯선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저자가 바라보는 인류의 미래는 공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고 구체적인 가능성까지 제시해 설득력을 높인다. 예를 들면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화성을 따뜻하게 만드는 ‘테라포밍’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살포해 인공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화성의 온도를 높일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화성 정지 궤도에 인공위성을 띄워 항상 극지방에 햇빛을 계속 쪼이거나 지독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뿌리는 것을 제시한다. 또 화성 이후 태양계를 벗어난 가까운 별 탐험은 아주 작은 ‘나노십’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저장의 주장이다. 이 ‘나노십’은 30g이 채 되지 않는 무게로, 지구에서 발사된 레이저빔으로부터 동력을 얻어 우주로 나아갈 것이다.
저자인 카쿠 교수는 이론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이자 미래학자로, 우주에 대한 ‘끈의 장 이론(string theory)’의 공동창시자다. 끈 이론은 우주의 모든 기본입자의 특성을 점이 아닌 ‘진동하는 끈’으로 설명한다. 지난 2015년 서울경제가 주최한 ‘서울포럼 2015’의 연사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바 있다. 그는 앞서 ‘불가능은 없다’ ‘미래의 물리학’‘마음의 미래’ 등 다양한 대중 과학서를 통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매력은 어려운 이론물리학 등 과학의 세계를 탁월한 비유와 위트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번 신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과학 영화, 공상과학소설, 역사적 사실들을 오가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우주 관련 과학 이론들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70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유연하고 긍정적인 생각 역시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2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