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간 ‘쩐(錢)의 전쟁’이 치열하다. 최근 KB증권이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005940)에 이어 발행어음시장에 진출했고 신한금융투자도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초대형 투자은행(IB) 대열에 합류했다.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이 단순 중개에서 IB, 자산운용으로 변화하면서 대형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도 생존을 위해 자본 확충에 혈안이다. 신한금융지주는 10일 정기이사회에서 신한금투에 대한 6,600억원 출자 안건 승인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신한지주(055550)가 오는 6월 신한금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올 하반기 증자가 완료되면 신한금투의 자기자본은 3조4,259억원에서 4조859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신한금투가 자본금 4조원을 넘기면 미래에셋대우(006800), 한투증권, NH증권, KB증권, 삼성증권(016360)에 이어 여섯 번째로 국내 초대형IB에 합류하게 된다.
신한지주는 이번 증자로 계열사 간 시너지 강화 및 신한금투를 통한 발행어음시장 진출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올해 3월 취임한 김병철 신한금투 대표는 취임 간담회에서 “대형증권사는 브로커리지 중개기능뿐 아니라 모험자본공급의 역할도 병행한다는 점에서 초대형 IB로 가기 위한 자기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며 초대형 IB 도약을 공언했다.
신한금투의 증자가 완료되면 자기자본 3조원대 증권사는 메리츠종금증권·하나금융투자가 남게 된다. 두 곳 모두 당장 증자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머지않아 자본금 4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의 경우 자본 확충보다는 순이익을 적립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나금투는 지난해 1조2,000억원대 유상증자를 단행해 올해 연이은 증자가 부담스럽지만 지주사 지원을 통해 언제든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평가다.
증권사들이 앞다퉈 자본금을 대폭 늘리려는 것은 갈수록 치열한 금융투자 업계에서 대형 경쟁사들과 다투려면 최소한의 덩치를 불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금 4조원 이상 증권사만 신청할 수 있는 발행어음 사업이 대표적이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 2배 이내에서 자사 신용을 바탕으로 어음을 발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기업 대출이나 비상장사 지분 투자, 부동산 금융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신규 자금줄을 확보해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최근 KB증권이 발행어음 신규 인가를 받으면서 국내 초대형 IB 중 발행어음 사업자는 기존 한투증권·NH증권에 이어 3파전 양상이 됐다. 미래에셋대우와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인가가 지연되는 가운데 신한금투가 하반기에 발행어음 인가까지 받게 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의 운용 역량에 따라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여지가 크다”며 “운용을 잘해서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원리금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발행 규모가 클수록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기준 발행어음 총 잔액은 한투증권 4조6,000억원, NH증권 2조3,000억원 등 6조9,000억원대다. KB증권의 합류를 계기로 조만간 10조원대 돌파가 예상된다.
부동산 등 자산에 투자하는 IB사업의 승패도 자기자본 규모와 밀접하다. 한 증권사 임원은 “자기자본이 클수록 좋은 물건을 많이 확보하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확률이 높다”며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국내외 대형 부동산 투자가 이뤄지고 실적도 월등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