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기만 하면 어김없이 히트를 치는 영화감독이 한 명 있었다. 기자가 묻는다. “감독님, 어떻게 감독님은 만드는 영화마다 대박이 나는 겁니까. 펀딩도 남들은 쩔쩔매는데 투자설명회를 했다 하면 구름같이 모이는 비결이 뭡니까.” 감독의 답변은 “어떻게 그걸 쉽게 말할 수 있나요. 한마디로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라는 거다. 결국 그 기자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장에 새벽 일찍 나가 현장취재를 하기로 결심한다. 오전6시쯤 되니 그 유명한 감독이 촬영 현장에 모습을 보인다. 가장 먼저 나온 거다. 촬영장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조금 있다가 조감독·촬영감독·주연배우·조연배우가 나오고 엑스트라가 가장 나중에 나온다. 감독이 다 짜놓은 시나리오다. 기자가 묻는다. “감독님,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청소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하! 청소하면서 그날 신을 찍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다 그려봅니다.” 역시 잘나가는 감독은 다르구먼!
우리나라는 갑질 문화가 심하다. 어딘들 없을까만 우리나라는 유독 심하다. 특히 군대가 그렇다. 고참들이 신참들의 군기를 잡는 것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대개 고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신참에게 떠넘기는 것이 갑질 문화의 핵심이다. 한 부대에서는 그러한 것이 싹 사라졌다. 물론 그 부대도 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새로 장군이 부임하고 나서 그러한 관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질하는 고참들을 닭 잡듯이 잡아서 그랬을까. 그렇게 한다고 잘되던가. 그 장군을 인터뷰해보니 비결은 비교적 간단했다. “예, 저는 제 방 청소를 절대 부관이나 사병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꼭 합니다.” 자, 사단장이 직접 자기 방을 청소하는데 그 밑에 있는 참모 장교들이 자신들의 부관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을까. 아마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그 밑의 부하는. 그 밑의 부하의 부하는. 이렇게 조직 문화가 잡혀가는 거다.
자식을 둔 학부모는 다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 논술시험이 도입된 직후의 일이다. 당시는 논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니던 때라 학부모 대상 입시설명회에 나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대학 총장도 가서 잘 설명해주고 오라고 했다. 가보니 500명 정도의 학부모가 눈에 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논술을 잘 보려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힘줘 강조했다. 질문 시간이 왔다. 어떤 중2 학생을 둔 학부모가 “독서의 중요성은 교수님 말씀을 안 들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애가 책을 죽기보다 읽기 싫어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우선 대입설명회에 중2 학부모가 온 것부터 신기했다. 선행학습은 학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도 해야 한다고 한다. 좋은 대학에 애를 넣으려면!
그 학부모에게 “그동안 어떤 방법을 써봤냐”고 물었더니 온갖 방법을 다 써본 것 같았다. 때만 되면 선물은 항상 책으로 사줬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책만큼은 절대로 안 읽더란다. 책을 읽으면 용돈을 더블로 올려줬다고 한다. 그랬더니 딱 그때만 읽고는 그만이라고 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불이익도 줘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 안 여기저기에(화장실 포함) 책을 다 깔아놓고 눈에 띄게 배치해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란다. 그래서 백약이 무효니 처방을 말해달란다. 우선 책 선택 자체를 학생 본인이 해야 한다. 내재적 동기가 있어야만 지속적으로 독서한다. 돈이나 선물로 사람을 매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애가 책 읽는 동안 부모님은 뭘 하고 계셨습니까” “아빠는 회사에서 늦게 들어오고요, 저는 그 애 옆에 붙어 있으면 감시하는 것 같아 응접실에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크게 틀지도 못하고 아주 조그맣게 볼륨을 낮춰서 보고 있었습니다.” 자식이 책 읽기를 원하면 부모가 항상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손자가 장난감 조립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것은 내가 봐도 정말 힘든데 그것을 척척 한다. “야 넌 어떻게 그런 것을 다 할 줄 아니. 존경스럽다”고 말하자 손자는 “할아버지, 이거 유튜브에 가면 하는 거 다 보여줘요! 그 누나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다 돼요!” 그래, 나도 이제 손자가 하는 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한 번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백번 말해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