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화웨이 봉쇄작전’을 펼치면서 부품 업계에 긴장감이 번지고 있다. 화웨이발 반사이익이 예상되는 스마트폰이나 통신장비 분야와 달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쪽은 화웨이를 고객사로 두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에서 대대적인 ‘애플 불매운동’도 예상되는 상황이라 정보기술(IT) 수요 전반이 크게 둔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인텔·퀄컴 등 미국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를 끊으면서 앞으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제재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7,500만대에서 최대 1억대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화웨이 메모리칩은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이 공급한다. 증권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삼성 반도체 매출의 10%, 하이닉스 매출의 4%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화웨이가 부진하면 갤럭시폰이나 다른 중국 업체의 스마트폰 등이 더 팔려 전체 매출을 메워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글로벌 경기가 하향하는 상황이라 대체 수요 자체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냉정한 분석도 제기된다. 한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사업은 반사이익을 얻을지 몰라도 반도체 사업은 악재”라며 “특히 순수 메모리 업체에 가까운 SK하이닉스는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봤다.
중국에서 애플 판매가 고꾸라지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애플과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고객사에 포함돼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고객사의 지난해 총매출 비중은 14%에 달했다. 업계 2~3위 메이저업체인 화웨이와 애플의 동반부진은 시장 파이를 쪼그라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아이폰 수요 감소의 직격탄이 예상된다. 화웨이가 유럽 등 하이엔드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채용을 확대하고 있었다는 점도 악재다. 화웨이의 중국 내수용 모델보다는 이번 제재로 수요가 감소할 해외 판매용 모델에서 OLED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애플과 화웨이에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삼성전기·LG이노텍 등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따른 후폭풍을 가늠할 관건으로는 미국 외 다른 국가 기업들의 ‘반(反)화웨이’ 진영 참여 여부가 꼽힌다. 이미 독일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테크놀로지, ST마이크로 등이 화웨이에 부품 공급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ARM(영국)·TSMC(대만)·소니(일본) 등 글로벌 기업의 동참 여부가 중요하다”며 “이들이 생산하는 부품은 시장에서 구하기 힘들고 스마트폰에 독점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재고 확보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 3대 메모리 업체에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마이크론의 지난해 매출 303억9,100만달러 중 중국 시장 비중은 57%(173억5,700만달러)에 달한다. 중국 정부가 마이크론 불매를 강제하지 않더라도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마이크론 부품 비중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