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TV 제조업체 TCL이 북미시장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005930)를 앞질렀다. 글로벌 TV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그간 선진 시장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품질을 앞세워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중국 업체의 저가공세에 역전을 허용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화웨이도 TV 시장 진출을 선언하는 등 국내 TV 제조업체를 향한 중국 업체들의 압박이 날로 거세지면서 업계의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22일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TCL은 1·4분기에 북미에서 243만 2,800대를 팔아 시장점유율 26.20%로 1위로 기록했다. 반면 그간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는 202만 600대를 팔아 점유율 21.80%를 기록하면서 2위로 내려 앉았다. TCL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5년만 하더라도 2.52%에 불과해 이름도 못 내밀 정도였지만 2016년에는 4.10%, 2017년에는 9.90%, 작년에는 12.70%를 기록하는 등 매년 빠른 성장을 거듭하면서 삼성전자를 따라잡았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북미 시장 점유율이 30.4%를 기록했으나 매년 판매량이 줄면서 1위 자리를 내줬다. LG전자(066570)의 1·4분기 시장점유율은 지난해와 같은 12.30%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업체들의 북미 시장 비중이 줄어드는 동안 TCL을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은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 2위 TV 제조업체 하이센스의 1·4분기 북미 시장점유율은 8.0%로 2015년 2.77% 보다 크게 성장했다.
수량뿐만 아니라 금액 기준 북미 시장 점유율도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중국 TV 제조업체들이 워낙 많은 물량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1·4분기 금액 기준 TCL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15.0%로 지난해(7.90%) 대비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작년 37.50%에서 올 1·4분기 36.90%로 줄었으며, LG전자도 19.0%에서 18.0%로 하락했다.
그간 가격을 무기로 앞세워 중국 내수 시장 위주로 영향력을 키워오던 중국 업체들이 해외 시장에서도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TCL의 1·4분기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0.8%(수량 기준)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점유율 18.8%를 기록하는 등 8분기 연속 20%를 밑돌았으며, LG전자는 12.8%로 전년(12,2%) 대비 소폭 상승했다. 아직까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글로벌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1·4분기에 3위를 차지한 TCL을 포함해 3~6위가 모두 중국 업체다. TCL·하이센스·샤오미·스카이워스 등 중국 업체들의 1·4분기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은 33.5%로 1위다. 반면 지난해 1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31.7%로 중국에 밀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 최대의 통신기기업체인 화웨이도 연내 TV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한국 업체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가성비를 내세운 액정표시장치(LCD)를 무기로 중국 내수가 아닌 해외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선진 시장인 북미에서 중국 업체가 삼성전자를 앞질렀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