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사회에서 총신대 총장으로 선임되자마자 많은 장애인이 따뜻한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총장직을 수행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걷어내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대학 총장 자리에 오른 이재서(66·사진) 신임 총신대 총장은 22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오찬간담회를 열고 “실명(失明)은 ‘절망’이 아닌 ‘축복’이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어릴 적 앓았던 병의 후유증으로 15세에 갑자기 시력을 잃어버린 이 신임 총장의 인생은 어떤 각본 없는 드라마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서울맹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73년 우연히 참가한 여의도광장의 선교 집회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당시 집회에서 한 미국인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듬어 안는 신의 섭리와 마주했다. 이후 신학대인 총신대 신학과에 진학한 그는 3학년이던 1979년 장애인을 위한 선교 단체인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했다.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일을 하나둘 벌이자 꿈과 욕심 역시 덩달아 커졌다. 선교 활동의 전진 기지를 해외에 설립하고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겠다는 두 가지 목표를 안고 1984년 미국으로 날아갔다. 교회에서 만난 평생의 배필과 백년가약을 맺은 직후였다. 이 총장은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과 현지 교회의 신도들이 모아주는 후원금, 아내가 세탁소·식당에서 일하며 벌어주는 돈으로 10년 동안 이를 악물고 버텼다”며 “필라델피아성서대 3학년으로 편입한 후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고 1994년 귀국했다”고 소개했다.
짧은 강사 생활을 거쳐 1996년 총신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올해 2월 정년을 채우고 퇴직했다. 1979년 창립한 한국밀알선교단은 그 사이 21개국에 100개가 넘는 지부를 갖춘 사단법인 ‘세계밀알’로 탈바꿈했다. 세계밀알의 총재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만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그를 다시 학교로 이끈 것은 동료 교수와 학생들이었다. 김영우 전 총장이 배임증재 혐의로 구속된 후 학교의 갈등과 분규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던 시점이었다. 이 총장은 “주변에서 나 말고는 적임자가 없다며 총장에 도전해보라고 권유를 하길래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못 할 것도 없고 오히려 누구보다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주변의 권유로 총장 공모에 지원한 그는 1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지난달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총장으로 선임됐다. 이 총장은 “반목과 불신으로 가득한 구성원들을 다독여 학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단절된 학교와 교단의 관계를 다시 복원하는 것 역시 시급한 숙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펀드레이저(기금 모금가)’가 된 것처럼 4년의 임기 동안 열심히 외부 사람들을 만나 수백억 원을 모금할 것”이라며 “이렇게 모은 돈으로 학교의 열악한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고 학생들의 복지를 대폭 확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