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발걸음도 계속됐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3㎞가량 떨어진 노 전 대통령 생가까지는 붐비는 차량으로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교통체증이 계속되자 기다림에 지친 시민들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긴 행렬을 이루며 노란색 바람개비를 길 안내판 삼아 노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새로운 노무현’이 새겨진 현수막과 조형물들은 노 전 대통령이 품은 이상과 목표를 드러내듯 추모객들을 맞았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추모객이 2만명(오후5시 기준)을 넘은 것으로 집계했다.
정치권 주요 인사들도 봉하마을에 총집결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신 김정숙 여사가 추모식에 참석했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했다.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여야 지도부가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민생투쟁 대장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조경태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대표단만 대신 참석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이상에 공감하고 그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노 전 대통령과 이견을 노출했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저희는 의견 차이를 갖고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공유된 가치보다 우선하는 차이는 아니었다”며 노 전 대통령을 기억했다. 그러면서 “기념비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양국 경제가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초상화에는 “인권에 헌신하고,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과 겸손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 의장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가 완성하지 못했던 세 가지 국정목표였다. 이제 노무현의 꿈을 향해 다시 전진하겠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못다 한 꿈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지만 꿈꾸던 세상을 이루기까지 갈 길이 멀다”며 “노 전 대통령을 방해하던 잘못된 기성질서가 남아 있어도 멈추거나 되돌아가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10주기의 주제는 ‘새로운 노무현’이었다. 모친상으로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앞서 “지금까지 10년은 애도하고 기억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면 앞으로는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 또 하고자 했던 일 가운데 미완으로 끝난 것들을 챙겨서 실천해나가는 데 중점을 두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들도 ‘탈상’에 의미를 두는 발언들이 많았다. 창원에 거주하는 권진욱씨는 “이제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기보다 노 전 대통령이 목표했던 가치들을 이루기 위해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생가를 둘러보던 박선경(38)씨는 “그립다. 보고 싶다”며 “노 전 대통령이 말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2008년 2월25일 대통령 퇴임 이후 매년 계절별로 봉하마을을 찾았다는 송모(39)씨는 “퇴임하신 직후에 봉하에 내려와 노 전 대통령을 소리 내 불렀더니 진짜로 나오셨다”며 “지금도 부르면 나오실 것만 같다”고 말했다. 송씨는 “봉하는 이제 슬퍼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받는 곳”이라며 “앞으로도 노 전 대통령에게 위로받기 위해 내려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방문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에는 103만여명이 방문했고 지난해에도 72만명이 찾았다.
/김해=송종호기자 방진혁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