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어떤 목적으로도 자녀를 체벌하지 못하도록 민법에 규정된 ‘친권자의 징계권’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태어나자마자 신고도 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아이가 없도록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고 아동학대 조사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직접 맡는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삶의 만족도가 주요국 꼴찌 수준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23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은 아동을 양육의 대상이 아닌 현재 행복을 누려야 할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을 토대로 마련됐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민법상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것은 가정 내 아동 체벌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지난 1960년에 제정된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징계권이라는 용어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때려도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스웨덴 등 54개국은 아이 체벌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세계 주요국 중 한국과 일본만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법 개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부모에게는 훈육권을 포함해 교육할 권리가 있지만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가 돼야 하며 체벌이나 학대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이의 일탈을 막기 위한 부모의 원칙적인 훈육마저 법적인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조치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국민 대다수는 “상황에 따라 체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학대·유기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해서는 국가가 적극 나선다. 현재 민간에서 담당하고 있는 아동학대 조사를 시군구 공무원이 직접 수행한다. 아동학대 의심 사례를 조사하려고 해도 부모가 협조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인 민간 조사의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해서다.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도 없이 버려지는 아이가 없도록 의료기관이 출생하는 모든 아동을 국가기관 등에 통보하는 ‘출산통보제’도 도입한다. 미성년·미혼모처럼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익명 출생신고를 일부 허용하는 보호출산제도 도입할 예정이다.
불가피하게 가족과 분리돼야 하는 아동에 대해서도 민간 시설이 아닌 지자체가 직접 부모와 상담하고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보호방식(가정위탁·그룹홈·시설·입양 등)을 정하도록 체계를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직 공무원 등 담당 인력도 각각 700여명 늘린다. 현재 시군구 평균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192명이나 담당 인력은 평균 1.2명에 불과하다. 계획대로 시행되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지자체 책임하에 상담·가정조사·보호결정·사례관리가 이루어진다.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위한 ‘전문가정위탁제도’도 도입한다.
아동의 건강권도 강화된다. 고위험 임산부에 대한 지원 편의성을 높이고 신생아 검진 항목을 추가하며 영구치가 완성되는 12세 전후로 ‘아동 치과주치의’ 제도를 도입한다. 아이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누리과정·저학년 교육과정에 놀이시간을 넣고 교실이나 학교 내에 놀이공간도 확충하기로 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