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나이를 먹고 있는지가 불안해”, “다들 나이 드는 건 처음이니까…처음인 것 투성이야. 그래서 다 불안한 거야.”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기 마련이죠. 그럴 때는 보통 자신들의 ‘인생 멘토’에게서 조언을 구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즘 20·30대는 사람이 아닌 보노보노, 푸, 인어공주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통해 고민의 해답을 찾는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처음 나타난 건 지난 2016년 여름입니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대사나 이미지를 활용한 이른바 ‘캐릭터 도서’ 열풍이 불게 된 것인데요. 출판사 아르테(arte)가 선보인 백영옥 작가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이 그 시작을 알렸죠. 이 책은 백영옥 작가가 추억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앤’의 시각에서 삶의 한가운데 지쳐가는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힐링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앤의 대사를 빌려 어른으로서 삶을 헤쳐가고 끊임없이 좌절에 맞닥뜨리는 청년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는 데요.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은 20·30대부터 40·50대까지 사로잡으며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각종 서점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캐릭터 도서’에 ‘힐링’ 느끼는 청춘들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 기획자인 출판사 아르테(arte) 원미선 본부장은 “책을 기획하던 2015년 당시엔 ‘캐릭터 도서’라는 콘셉트를 염두에 두고 구상하진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 본부장은 “<빨강 머리 앤>이 지금이 40·50대의 소녀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었던 만큼 앤의 이미지가 부활한 에세이를 만나게 된다면 환영할 독자층이 2~3만 명은 충분히 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말했습니다. 중년층 여성의 소녀 감성을 깨우기 위한 이 책이 20·30대 청년층의 감성까지 자극한 셈입니다.
앤의 활약에 힘입어 다른 출판사들도 하나 둘 ‘캐릭터 도서’를 선보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출판사 RHK가 선보인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등 이른바 ‘곰돌이 푸 시리즈’ 입니다. 아울러 출판사는 디즈니 캐릭터인 미키를 활용한 <미키 마우스, 오늘부터 멋진 인생이 시작될 거야>나 디즈니 프린세스를 주제로 한 <디즈니 프린세스, 내일의 너는 더 빛날 거야> 등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서점의 에세이 부문 ‘베스트 셀러’를 한동안 차지했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생활에 지친 20·30대 그리고 여성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캐릭터였던 걸까요?
만화 원작자가 캐릭터의 시선에서 고민을 상담해주는 도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바로 지난해 3월 한국에 진출한 <보노보노의 인생상담> (이가라시 미키오 저·김신회 역)입니다. 이 책은 2015년 일본에서 먼저 출판됐습니다. 보노보노 공식 웹사이트 ‘보노넷’에서 모집한 고민과 답변을 토대로 집필됐죠. 이 책은 국내서 20만 부 이상 팔리며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 20·30대가 ‘캐릭터’를 인생 멘토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 같은 ‘캐릭터 도서’에 특히 20·30대가 공감하고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져 보이는 이들의 성격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꼽힙니다. 보노보노는 애니메이션에서 말투와 행동이느려 친구 다람쥐인 ‘포로리’에게 구박을 종종 받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전혀 밉지 않죠. 빨강 머리 앤도 가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자신을 수양딸로 키워주는 마릴라 커스버트에게 혼나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죠. 환상의 나라 ‘디즈니’의 캐릭터들도 비슷합니다. 조금은 별나 보이는 캐릭터의 말들은 현실에 지친 20·30대를 자극하기 충분했습니다. <보노보노의 인생상담>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대학생 최 모 양은 “어릴 때는 약간 눈치 없어 보였던 보노보노였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없던 ‘여유’가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20대들에게 없는 것이 캐릭터들에게는 있기 때문에 캐릭터 열풍이 계속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미선 본부장은 각 캐릭터들의 성격, 이미지, 브랜드 가치가 캐릭터 도서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다른 생경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보단 캐릭터를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는 무의식적인 판단이 구매자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캐릭터 도서의 약진은 문구 시장에 또 다른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원 본부장은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이 베스트 셀러로 약진하는 동안 파우치, 엽서, 여권 지갑 등 팬시 제품 시장에서 앤의 이미지를 라이선싱한 제품들의 품목이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추억 속 캐릭터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번 주말에는 서점에 가 추억 속 캐릭터들의 ‘현실 조언’을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