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상환능력 떨어지자 자금집행도 깐깐...재창업 기회마저 줄어

[부실률 높아지는 중기정책자금]

'재도약기 기업' 지원자금 부실률은 4.6%로 급등

2년간 최저임금 29% 올라 2~3년 후엔 더 나빠질듯

"타깃 초기 中企에 맞추되 이자율 시장 수준으로 높여야"

주력 산업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제조업 전반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인천에 자리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경제DB주력 산업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제조업 전반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인천에 자리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서울경제DB






경기도 파주에서 욕실용품을 만드는 A사의 이인오(가명) 대표는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재창업자금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재창업자금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진공을 통해 제공하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중 하나다. 재기 기업인이나 폐업 경험이 있는 창업자에게 지원하는 것으로 기술등급을 위주로 심사를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이 대표는 지난 15년간 20억원을 들여 시제품을 개발했고 특허 3종, 디자인특허 3종, 상표권 1종까지 등록한 상태였다. 생산 직후 물건을 납품할 대리점까지 5~6곳 확보했다. 직원이 있어야 자금 받을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듣고 직원 2명을 신규 채용했다. 하지만 중진공 측이 ‘생산설비가 미흡하다’ ‘제품 관련 기술인증이 안 됐다’는 이유를 내걸며 재창업자금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채무조정을 밟으면서 지난 2011년도에 중진공에서 빌렸던 자금을 상환하지 못한 게 발목을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재창업자금 자체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기업인을 도우려고 만든 건데 중진공에서는 재창업 기업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다”며 “기업인 사이에서는 중진공이 부실률을 관리하기 위해 우리처럼 한 번이라도 실패한 기업인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27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경기 악화와 인건비 등 ‘이중고’로 인해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9%나 오르면서 2~3년 이후 도래하는 자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나 부실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이 중에서는 이 대표처럼 사업 여건을 갖췄음에도 ‘실패’라는 ‘낙인 효과’로 정책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인건비 리스크와 불경기 지속이라는 복합 요인이 정책자금 부실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정책의 수혜자인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비용 상승·불경기→경영난 가중→부실률 상승→자금조달 여건 악화→불경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벌써 진입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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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서울경제가 김삼화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진공의 ‘최근 5년간 정책자금융자 부실률 현황’에 따르면 2014년 2.1%에 머무르던 중기 정책자금 부실률은 이듬해 3.4%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3.8%까지 치솟았다. 부실률 증가세는 재도약기 기업군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중진공은 자금 지원 대상에 따라 △창업기 △성장기 △재도약기로 중기 정책자금을 분리하고 있다. 이 중 재도약기 기업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재도약지원자금이 포함된다. 재도약기 부실률은 2014년 3.3%에서 2015년 4.7%로 급증했다가 그 이듬해에는 2.8%로 급감했다. 하지만 2017년에는 3.6%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4.6%대로 상승했다. 재도약기 기업은 현금흐름이나 신용등급, 고용수준 등 모든 지표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창업·성장기 자금 부실률도 전반적으로 증가세다. 창업기 부실률은 2014년 2.3%에서 2018년 3.4%로 증가했으며 성장기 부실률은 같은 기간 1.6%에서 3.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중기 정책자금의 부실률이 오른 1차 원인으로는 불경기가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이나 재창업기업처럼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조달받기 힘든 업체’, 즉 매출이 뚜렷하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중기 정책자금이 공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세기업일수록 경기가 부채 상환 여력에 영향을 주는 만큼 정책자금 부실률과 경기요인의 ‘상관관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 정책자금은 영세기업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인건비와 원재료 등 고정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진공에 따르면 지난해 중기 정책자금을 받은 기업 가운데 대부분은 기계금속(37.1%), 섬유화학공업(15.1%), 유통(13%) 등이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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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이 각각 16.3%, 10.9% 상승하면서 부실률이 오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데 있다. 부실률은 보통 자금 상환 시기를 기준으로 책정한다. 이로 인해 2~3년 시차를 둔 내년 이후부터 인건비 인상의 후폭풍이 가시화하면서 정책 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많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홍순영 한성대 특임교수는 “기업이 성장하고 존속하려면 수입을 극대화하고 비용은 극소화해야 한다”며 “그러나 주력 업종이 쇠퇴하고 내수가 위축되면서 국내 중소기업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용 부담은 늘어나고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자금 상환 여력마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추경도 부실률 인상의 요인으로 꼽힌다. 추경예산이 늘어날수록 심사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800억원 이상의 추경을 집행해왔다. 특히 2016·2017년에는 각각 1조원과 1조500억원의 추경이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부실률이 올라가면서 정책금융기관의 자금운용 행태가 더욱 보수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박진서(가명) 대표는 “대표들 사이에서도 중진공이나 신용보증기금이 요즘 들어 재무건전성이 높은 기업에만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며 “불경기와 인건비 상승, 연대보증 폐지 등의 영향으로 정책금융기관에서 공격적으로 건전성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 기회에 중기 정책자금 구조를 전면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중기 정책자금 이자율을 시중금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중기 정책자금 이자율은 2~3%선에서 운영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시중금리에 맞춰 중소기업 정책융자를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중기정책자금이 시혜적인 성격이 강해 도덕적 해이에 취약한 편이다. 정책 타깃을 초기 중소기업에 맞추되 이자율은 시중금리 수준으로 올려 ‘받을 능력이 있는 기업만 받게끔’ 유도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정책 융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초기 중소기업 자금시장 구조를 민간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민간투자 중심으로 초기 기업에 유동성이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짚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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