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28일(현지시간) 올해 상반기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과 일본·한국·독일 등 4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유지하고 베트남·싱가포르 등 5개국을 새롭게 추가했다.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미 재무부는 중국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환율조작의 감시범위와 평가기준을 강화하고 중국에 “외환시장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위안화 절상 압박 수위를 끌어 올렸다.
미 재무부가 이날 발표한 2019년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는 기존에 6개국이던 환율관찰국을 9개로 늘렸다. 종전에 명단에 포함됐던 인도·스위스는 제외됐지만 베트남·싱가포르·말레이시아·이탈리아·아일랜드가 새로 환율관찰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가 크게 감소하고 지난 3월 처음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한 한국에 대해서는 현 상황이 계속되면 하반기에 환율관찰국에서 제외하겠다고 약속했다.관찰대상국이 이전보다 늘어난 것은 미 재무부가 검토 대상 국가를 늘리고 평가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우선 감시 대상국은 기존 미국의 12대 교역국에서 수출입 규모가 400억달러 이상인 21개국으로 늘려 잡았다. 이는 미 상무부가 최근 통화가치를 낮춰 무역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교역국의 통화가치 하락 여부 판단을 재무부에 맡기기로 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재무부가 환율시장 개입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대미 무역흑자 규모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 △외환시장의 지속적 개입 정도 등 세 가지를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 비중을 기존 GDP 대비 3% 이상에서 2% 이상으로, 외환시장 개입 기간을 12개월 중 8개월에서 6개월로 각각 강화했다.
이처럼 미국이 글로벌 외환시장 감시를 강화하는 것은 최근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위안화 절하를 최대한 저지하고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중국이 관세전쟁에 따른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위안화 절하로 수출경쟁력을 지탱한다고 보는 미국은 지난주 인위적인 통화 절하가 보조금이나 마찬가지라는 판단하에 관세폭탄을 추가로 투하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후 위안화는 잠시 강세를 보였으나 곧 약세로 전환했다. 인민은행은 29일 달러 대비 위안화 중간환율을 0.02% 오른(가치 절하) 6.8988위안으로 고시했으며 이날 역외시장에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6.92위안대에 형성됐다.
미 재무부는 이날 중국에 “시장 개입 등 환율 투명성이 결여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비시장적 메커니즘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국가 통제를 강화해왔다”고 비판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환율 문제와 관련해 강화된 관여 조치를 중국에 지속할 것”이라며 “중국이 지속적인 통화 약세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확대하며 환율 공세를 강화하는 데 이어 중국 기업들의 미국 자본시장 접근권으로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중국 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 등 월가 금융시장을 통해 수백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고 미 기업이나 부동산을 인수합병(M&A)했는데 이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미 정치권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관측이다. NYT는 이 경우 중국과의 거래가 많은 골드만삭스·블랙스톤 등 미 금융회사들이 타격을 입게 되고 중국이 보유한 미국 주식과 국채 투매로 반격에 나설 수 있다며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을 우려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