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성냥갑 아파트 공화국에서 탈피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도시·건축혁신 방안’의 시범사업지 4곳이 확정됐다. 새로운 혁신 방안을 적용하면 재건축·재개발 첫 단계부터 시가 관여하게 된다. 간섭만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와 사업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교차하고 있어 시범사업지의 행보에 정비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서울시는 도시·건축 혁신 방안의 시범사업지로 재건축 사업지인 상계 주공5단지, 주택정비형 재개발 사업지인 금호동3가 1번지, 재정비촉진사업인 흑석 11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인 공평15·16지구 등 총 4곳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상계주공5단지는 아파트 단지, 금호동3가 1은 구릉지 지형, 흑석 11구역은 한강변, 공평15·16은 역사 도심이라는 입지특성을 갖고 있다. 서울시는 흑석 11구역과 공평15·16구역에 대해 7월까지 공공 지침을 마련하고 연말까지 정비계획을 변경할 계획이다. 새롭게 정비계획을 수립 중인 상계 주공5단지와 금호동3가 1번지 일대는 12월까지 사전 공공기획을 통해 정비계획 수립 지침을 제시하고 내년 5월까지는 정비계획을 결정한다는 목표다.
앞서 지난 3월 서울시는 사전 공공기획 도입과 정비사업 심의기간 단축, 대단지(슈퍼블록) 분할, 현상설계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시·건축 혁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운데서도 사전 공공기획 단계를 놓고 업계에서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조합이 정비 계획을 만들기 전에 서울시가 단지별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사전 공공기획 단계가 추가되면, 임대주택이나 광폭도로, 디자인 등을 놓고 서울시가 더 큰 입김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사전에 협상이 잘 되면 정비계획을 다 만들어 놓고 나중에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번번이 재심의를 하는 현재의 방식보다 사업 기간이 빨라져 이득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혁신 방안으로 인해 도시계획위원회 개최 횟수를 3회에서 1회로, 소요 기간을 20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범사업지의 주민들은 일단 사업 기간이 단축된다는 데에 호응하고 있다. 흑석11구역 관계자는 “조합 임원과 일반 조합원 일부가 참여한 설명회에서 90% 이상의 동의가 나와 현재 서울시, 구청과 지속적으로 만나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이 도시계획 절차가 20개월에서 절반으로 단축된다니 거기에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비업계는 이 같은 방안이 장기적으로 또 하나의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사전 기획 단계에서 협의가 매끄럽지 않을 경우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도 시간이 많이 지체될 수 있다”며 “서울시가 관여하면 임대주택 등 공공성을 강화하려 할 텐데, 더 높은 수익성을 원하는 조합원들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