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중국대사관이 한국 기업인들의 상용(비즈니스용) 비자 발급 요건을 까다롭게 바꾼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 한국이 유탄을 맞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외교부와 여행업계에 따르면 주한 중국대사관은 이달 초부터 비자 발급과 심사 요건을 대폭 강화한 규정을 시행 중이다. 상용 비자의 경우 명함을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고 도장 날인과 과거 중국 방문 일자는 물론 체류 기간 세부 일정을 하루 단위로 꼼꼼히 기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상용 비자는 사업·문화·교육·과학기술 교류 목적의 비자로 중국 외교부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의 초청장이 있어야 발급을 받는다.
상용 비자와 함께 개별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일반 관광 비자의 발급 절차도 엄격해졌다. 비자 발급을 대행하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이전에는 여행사에서 임의로 서명을 대신해도 별 문제가 없었고 숙소 명칭은 굳이 기록하지 않았다”며 “지난 3일부터 여행자 본인이 서명을 직접 하고 숙소는 물론 일자별 관광 일정도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관광 비자의 경우 여행객의 소속 회사가 어디인지를 증명하는 명함은 따로 첨부할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중국대사관이 비자 발급 요건을 변경하면서 당장 국내의 주요 기업들은 이 같은 사실을 사내 임직원들에게 알리기 위한 긴급 공지문을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한국에 대해 “미국 편에 서지 말라”며 압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의 IT 기업들이 중국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대사관은 “최근 비자 발급을 대행하는 여행사의 허위 자료 신고가 너무 많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발급 기준을 일부 강화한 것”이라며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라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