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경상수지 적자는 수출경쟁력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증거이자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실물경제가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과도한 수출 의존도,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집중된 산업 불균형,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부재 등 기형적 경제구조가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대외 악재를 만나면서 상처 난 경제에 고름이 터진 것이다.
5일 발표된 지난 4월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은 수출과 수입의 차인 상품수지 악화다. 한국은행은 “4월 연말 결산법인들의 외국인 배당금 송금이 집중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며 ‘계절적 요인’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지록위마’에 가깝다. 올해 4월보다 배당소득수지 적자폭이 더 컸던 지난해 4월의 경상수지는 13억6,000만달러 흑자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출 감소의 영향으로 상품수지가 지난해 96억2,000만달러에서 올해 4월 56억7,000만달러로 급락한 것이 경상수지 적자의 바탕이 됐다.
상품수지 적자는 반도체 부진 때문이다. 통관 기준 4월 무역수지는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오히려 지난해 대비 0.8% 성장했다. 자동차 5.8%, 선박 53.6%, 일반기계 0.3% 등 부진에 허덕이던 주력상품이 선전했지만 -13.5%를 기록한 반도체 수출 감소폭을 만회하지 못했다. 심화된 반도체 의존도가 미치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문제는 반도체 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12월 7.25달러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의 5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3.75달러로 전월 대비 6.25% 하락했다. D램 가격이 4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6년 9월 이후 처음이다. 낸드플래시 가격 역시 3.93달러로 전월 대비 1.26% 떨어졌다. 가격뿐이 아니다. 한은이 1일 발표한 1·4분기 반도체 수출물량지수는 478.64(2010=100)로 집계됐다. 지난해 4·4분기(544.03)보다 12.0%가량 줄어들었다. 반도체 가격 하락에 이어 수출물량까지 줄면 적자 기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시장에서는 “상저하고로 전망한 정부의 예측이 틀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와 한은은 “하반기부터 반도체 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왔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당국자들이 반도체 시장을 너무 낙관했다”며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악화로 반도체 시장의 회복 가능 시기는 점점 늦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은 4일(현지시간)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며 올해 세계 경제가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연초의 예상보다 0.3%포인트 낮아진 수치로 반도체 수요 역시 큰 폭으로 줄어들 것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은 전월동기 대비 38.7% 줄어든 21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4월에도 대중 반도체 수출은 20.2% 감소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기업의 반도체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올해 2·4분기에 상황이 더 나빠져 바닥을 칠 가능성이 있다”며 “반도체 시장이 언제 회복될지는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적자의 고착화는 대외신인도 악화와 자본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경상수지는 국가채무·대외채무·외환보유액 등과 함께 우리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수치이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는 문재인 대통령의 “40%를 지켜야 하는 근거가 뭐냐”는 발언과 함께 40% 마지노선의 의미가 상실됐고 외환보유액은 4~5월 두 달 연속 감소했다. 과거 사례에서도 경상수지 적자는 항상 자본유출로 이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일시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주력품목의 경쟁력이 상실되는 상태에서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면 외국인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