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방영된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는 서울서부지검에서 불거진 ‘스폰서 검사’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를 필두로 특임검사 수사팀이 꾸려진다. 특임검사는 검찰총장의 임명을 받아 검사의 범죄를 수사하는 제도다. 수사팀의 수사망이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뻗치자 특임팀을 해체하라는 압력이 청와대를 통해 검찰총장에게 전달된다. 황 검사는 검찰총장과의 면담에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 선봉에서 기준이 돼주는 사람. 그게 우리 본 모습이란 걸 국민들께 보여주라던 분, 어디 가신 겁니까”라고 되묻고, 총장은 “동료 잡고, 경찰서장까지 잡아놨으면 됐지. 전부 다 벌집을 만들 작정이냐”고 맞받는다. 특임팀 유지를 지지하는 서부지검 부장검사들은 항의 방문으로 황 검사에게 힘을 보탠다. “난 우리 존재를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총장의 말에 “저희 ‘존재’가 아니라 ‘존재 이유’를 지켜달라”고 말하며 ‘항명’을 서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스폰서 검사 사건은 검찰 인사들이 한 건설업자로부터 성 접대와 금품을 받고 관련 사건을 무마해줬다는 의혹이 인 ‘김학의 사건’과 닮아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조사한 사건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 중 하나다. 뇌물수수 시점인 2008~2009년께 김 전 차관의 신분은 현직 검사장이었다. 2013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 성 접대 장면을 담은 ‘별장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민적 파문이 일었고, 이후 두 차례 수사가 진행됐지만 김 전 차관은 뇌물수수를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법망을 피해갔다. 올해 3월 검찰과거사위 권고로 수사단이 꾸려졌고 김 전 차관에 대해 처음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지난 4일 여환섭 수사단 단장(청주지검장)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김 전 차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으나, 성범죄 부분은 입증하지 못했다. 또 ‘윤중천 리스트’에 연루된 다른 검찰 인사에 대해서는 수사에 착수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고, 부실수사 의혹이나 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대부분 결론 내리지 못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발표 이튿날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 외에 압수수색을 포함해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면서 “공소시효 등 법·제도가 도저히 허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외부 시선으로 수사과정의 적절성을 평가받는 수사심의위원회 개최도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 관련 의혹을 파헤치는 특임팀 연장을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검찰총장 앞에 섰던 드라마 속 검사들과 현실은 사뭇 다른 것 같다. 과거사위 ‘리뷰(재검토)’의 대상이 된 검사들은 법적 대응을 시사하는 등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김학의 사건에서 청탁 대상으로 지목된 ‘윤중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과거사위 관계자에 대해 민·형사상으로 대응 중이다. 한 전 총장은 과거사위 정한중 위원장 대행과 김용민 위원, 이규원 검사를 상대로 5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윤 전 고검장도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최초 수사 당시 청와대에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은 곽상도 전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 고발을 검토 중이다. 곽 의원은 “문 대통령이 검찰에 철저 수사를 지시해 ‘야당 국회의원 죽이기’에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용산 사건 당시 검찰 수사팀도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면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수사팀 일원이었던 박종범 변호사는 “과거사위에서 채택되지 않은 조사단 보고 내용이 배포돼 수사팀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조사 내용 중 일부는 허위 공문서 수준”이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팀은 과거사위의 명예훼손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가 불러온 ‘후폭풍’은 되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 주장에 불을 붙였다. 과거사위 실무조직인 진상조사단이 교수, 변호사 등 외부인으로 구성돼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검사를 포함한 전·현직 고위 공직자의 비위를 수사대상으로 삼는 공수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과거사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 과거사 사건에 대한 조사 한계가 명확했다며 수차례 검찰을 수사하는 공수처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법무부는 이르면 다음 주 장관 간담회를 통해 검찰의 태도에 대해 성토하고 공수처 도입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5일 모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찾아 ‘검찰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강연한 문무일 검찰총장은 “리뷰(review) 가능한 검찰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중립적일 수 있게 하려면 ‘리뷰어블(reviwable·재검토 가능한)’ 해야 한다면서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사건을 재검토할 근거가 되는 자료를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문 총장은 “검찰은 수사 착수부터 선고 직전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에 제한 없이 관여하고 있다”며 “일이 끝나면 책임을 추궁받아야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장자연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조사단은 증거·서류 등 수사기록이 상당 부분 누락돼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 스스로 언제든 평가와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갖는 것과 재평가를 위한 기록 보존 시스템 구축”이라며 “그래야 첫 검찰 과거사 조사가 검찰의 근본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