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국산맥주도 4캔에 1만원?

국산 맥주 4캔 구매 시 1만원 시대 열리나

정부 5일 당·정 협의회서 주류과세체계개편방안 확정

국산 캔맥주, 수제 맥주 가격 하락…생맥주는 2년 유예 후 상승 전망

소주, 위스키 등 주종도 장기적으로 종량세 전환 추진




‘맥주 4캔 동시 구매 시 1만원’

이제까지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맥주 4캔에 1만원’ 행사는 수입 맥주가 전부였습니다. 국산 맥주 캔은 행사에 포함되지 않아 30% 가까이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했죠. 앞으로는 국산 맥주도 4캔에 1만원 시대가 열릴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의 주류 과세 체계가 50년 만에 개편되는 덕분이죠. 가격에 따라 과세하는 종가세에서 알코올 도수와 양을 기준으로 하는 종량세로 바뀌는 겁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5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의 주류 과세 체계 개편 방안을 확정했습니다. 맥주와 탁주(막걸리)는 우선 전환되고 소주는 개편 대상에서 제외됐죠. 정부는 이날 확정한 주세법 개편안을 올해 세법개정안에 담아 9월 초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입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정협의에서 “당초 전 주종을 대상으로 종량세 전환을 검토했지만 주류 시장과 산업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업계 의견을 존중해 전환 여건이 성숙 된 맥주와 탁주 두 주종에 대해 우선 전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죠.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역시 맥주입니다. 핵심만 요약하면 국산 캔맥주와 수제 맥주는 가격이 하락하고 생맥주는 가격이 오르게 되죠.

주세법 개편을 촉발한 것은 국산 맥주가 ‘역차별’을 받는다는 논란이었습니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과세 체계에 차이가 나는 탓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죠.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에 이윤과 판매관리비를 모두 더한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해왔습니다. 반면 수입 맥주는 이윤과 판관비가 빠진 수입 신고 가격에 과세했죠. 한 마디로 국산 맥주는 마케팅 비 등을 모두 포함한 가격에 72%의 세율이 적용됐고 수입 맥주는 마케팅 가격 등 판매관리비를 뺀 가격에 세율이 적용됐던 겁니다. 국산 맥주가 세금을 더 내면서 가격 차이가 발생했던 거죠. 국내 맥주 업계 역시 수입 맥주 점유율이 2015년 8.5%에서 지난해 20.2%까지 급상승한 배경에는 이런 과세 방식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번 주세 개편안은 이런 역차별을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종량세 전환에 따라 국산 캔맥주의 가격이 내려갈 전망이죠. 이전까지 캔맥주(오비맥주·롯데주류·하이트진로 3사 기준)에 붙던 세금은ℓ당 주세 1,121원, 교육세·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하면 총 1,758원이었습니다. 앞으로 종량세로 전환됨에 따라 고정 세율인 ℓ당 830원30전의 주세가 붙게돼죠.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총 세 부담은 기존보다 415원 줄어든 1,343원이 됩니다. 주세만 보면 세 부담이 ℓ당 291원 줄기 때문에 캔맥주 1개당 100~200원가량 가격 인하 요인이 생기는 셈이죠.


수제 맥주는 이번 종량세 개편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재 출고 수량별로 최대 60%의 과세표준 경감 혜택을 받고 있는데 추가로 20%의 경감 혜택까지 받게 되는 덕분이죠. 관련 업계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진정한 맥주 품질 경쟁이 가능해졌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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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생맥주의 세 부담은 커집니다. 그 동안 생맥주는 병·캔맥주와 달리 용기가 필요없는 덕분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았죠.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체계에서는 그만큼 세 부담도 적었습니다. 그러나 주세법으로 개편되면서 출고가격과 상관없이 ‘ℓ당 830원30전’이 동일하게 부과되기 때문에 세 부담이 커지죠. 결과적으로 생맥주의 총 세 부담은 ℓ당 815원에서 1,260원으로 54.6% 오르게 됩니다. 페트와 병 맥주도 세금이 약간 오릅니다. 페트 맥주는 총 세 부담이 ℓ당 1,299원으로 39원, 병맥주는 ℓ당 1,300원으로 23원 상승하죠.

다만, 정부는 생맥주에 대해서는 2년 간 세율을 20% 깎아 ℓ당 664원20전만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러면 생맥주의 세 부담 오름폭은 207원으로 줄게 되죠. 정부는 한시적 세율 인하 기간인 2년이 지나더라도 생맥주 가격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국산 캔맥주에서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만큼 맥주 업체 내부에서 이를 상쇄해 생맥주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죠.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 역시 “생맥주 가격은 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그 동안 저렴하게 살 수 있었던 수입 캔맥주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전체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긴 하지만 고가 맥주는 세 부담이 줄고 저가 맥주는 상승하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기재부의 판단입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하이네켄과 스텔라는 가격이 오르고 기네스 같은 고가 맥주는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4캔에 1만원’ 형태의 마케팅이 유지될 것이라는 거죠.

맥주와 함께 종량세로 전환되는 막걸리는 ℓ당 41원70전을 적용해 가격 변화 유인이 크지 않습니다.

정부는 종가세로의 전환으로 ℓ당 세율이 고정되는 만큼 물가연동제를 적용해 물가 상승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세율이 물가 상승에 따라 오를 수 있는 셈이죠. 이번 개편에 업계 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소주, 위스키 등의 주종이 빠진 데 대해 김 실장은 “장기적으로 반드시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면서 “종량세 추진을 중단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50년 만에 어렵게 주세법 개편의 첫발을 뗐지만, 일각에서는 뚜렷한 명분 없이 특정 산업 보호에 세법이 활용됐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주세법 개편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면서 “국내 맥주 산업 보호를 위해 개편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가 맥주 가격은 떨어지고 저가 맥주 가격은 오르는 데 대해서도 “저소득층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역진적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죠.


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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