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토종 맥주 4캔을 9,000원에 팔아도 소비자들이 구매할지 모르겠네요. 조금 비싸더라도 맛있는 수제 맥주나 수입 맥주를 고르지 않을까요?”
얼마 전 맥주와 막걸리에 종량세를 우선 적용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후 한 편의점의 주류 상품기획자(MD)는 이렇게 말했다. 술의 양과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의 도입으로 맥주 1ℓ당 830원30전의 주세가 부과되고 이에 따라 캔맥주는 ℓ당 415원의 세금 절감 효과를 얻게 된다. 세금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자가격이 내려간다면 국산 캔맥주도 ‘4캔=1만원’ 판촉활동에 나설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국산 맥주의 품질 경쟁력 확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산 맥주의 현주소는 어떨까.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맥주 같지 않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된다. 또 맛이 밍밍해 소주와 섞어 마시는 ‘소맥 전용’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CU에 따르면 수입 맥주와 함께 구매하는 상품의 상위 목록에는 안주류가 올랐지만 국산 맥주의 동반구매 상품에서는 소주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국산 맥주의 싱거운 맛 때문에 맥주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없는 소맥용으로 자주 활용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산 맥주가 외면받는 동안 다양한 맛을 갈구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은 급성장했다. 수제 맥주 업계는 토종 맥주 업체가 눈여겨보지 않던 ‘에일’에 주목하며 ‘라거’ 일변도의 국내 맥주 시장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소자본으로 시작한 수제 맥주 업체가 실험정신으로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는 동안 국내 주류 대기업의 연구 진행 상황은 더디기만 했다. 대표적으로 하이트진로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율은 지난 2013년부터 6년째 0.3%에 머무르고 있다.
더욱이 종량세 도입에도 맥주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국산 맥주는 품질 경쟁력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 오비맥주 등 일부 국산 맥주 업체의 말대로 캔맥주 가격을 낮추면 반대로 세 부담이 높아지는 병맥주 등의 가격을 인상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종량세 도입으로 세 부담이 낮아지는 수제 맥주와 고가 수입 맥주의 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밀려드는 수입 맥주의 파도 속에서 국산 맥주 업계가 살 길은 ‘품질’이라는 기본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