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일 이란을 방문하며 중동외교의 중심무대로 뛰어든다. 일본 현역 총리가 이란을 방문하는 것은 지난 1978년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이후 41년 만이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 이란 간 경제·군사적 긴장이 한껏 고조된 중동 지역에서 양국을 중재하며 일본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지렛대로 삼겠다는 노림수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할 경우 오는 7월 선거 때 오히려 타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12~14일 이란을 방문해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최고지도자인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와 회담할 계획이라고 11일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과 이란이 연일 군사적 경고 수위를 높이는 등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일본 내에서는 이란과 전통적 우호관계를 쌓아온 일본이 이번 기회에 중동 지역의 ‘평화 메신저’로 부각될지에 내심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아베 총리에게 “이란에서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가 하면 이란 역시 “원유 제재를 완화하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 등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에 갈등 당사국도 기대감을 내비치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국과 달리 중동에서 군사적 이해관계보다 경제·외교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 동맹국 중 가장 중립적인 국가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도 이번 이란 방문은 일본의 앞날은 물론 자신의 정치생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기회다. 우선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일본으로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 해소가 시급한 과제다. 한때 원유 수입량의 40% 이상을 이란에서 들여온 일본은 현재 미국의 대이란 제재 동참으로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원유 수송선의 80% 이상이 이란과 가까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일본의 에너지 안보를 크게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에너지 정책의 생명선인 페르시아만 출입구가 봉쇄되면 일본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여기에 오는 7월21일 실시되는 일본 참의원(상원)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이번 방문은 그동안 부진했던 외교성과를 만회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아베 총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아베 총리는 ‘전후 외교 총결산’의 일환으로 강조했던 러시아와의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협상,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한국의 후쿠시마산 농산물 수입금지 조치 등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해 지지율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최근 NHK 여론조사에서도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성과에 기대감을 갖는다는 응답은 15% 정도에 그쳤지만, 그가 중재자로서 획기적 성과를 올린다면 지지율 반등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아베 총리와 이란의 개인적인 연고도 그가 이란 방문에 남다른 정성을 쏟는 이유다. 아베 총리는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이었던 1983년 당시 외무상이던 부친 아베 신타로를 따라 비서관 자격으로 이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전쟁 종식을 위해 나섰던 아베 신타로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자신이 이번에 평화 도출에 성과를 올려 부친이 못다 이룬 뜻을 펴겠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직 일본 관료를 인용해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중동평화를 위한 아버지의 노력을 부활시키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아베 총리가 이달 말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로하니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안팎의 기대감과 달리 외신들과 글로벌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아베 총리의 방문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AFP통신은 “일본은 테헤란 및 워싱턴과 각각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아베 총리는 양측 모두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없어 중재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도 이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경제적 내용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배려해 핵 합의를 지키라는 요구만 한다면 이란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