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1시. 경기 부천시 오정동에 위치한 CJ대한통운의 양천서브터미널에서 택배 기사로 근무한 지 1년이 채 안 된 정철규(33)씨가 능숙한 자세로 택배 상자를 차량에 싣고 있었다. 정씨의 일과는 오전 7시에 시작했다. 자동분류장치인 ‘휠소터’가 택배 상자를 주소별로 구분해 그가 주차한 차량 앞까지 전달해주면, 택배 상자를 차량에 넣기만 하면 된다. 휠소터는 컨베이어 벨트에 내장된 소형 바퀴가 택배상자를 배송구역별로 자동 분류해주는 장치로 지난 2016년 택배업체 중 CJ대한통운이 최초로 도입했다. 휠소터가 택배 물건을 차에 실을 수 있는 상태로 주소별로 분류해지니, 일의 속도를 배로 높였다는 반응이다.
오전 9시에는 분류 작업을 도와주는 일명 ‘분류 도우미’가 출근한다. 정 씨는 “택배기사 4명이 분류 도우미 한 명을 고용하고 있다”면서 “매월 인당 18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편하게 일할 수 있고 분류 작업 대신 배송이나 거래처를 확보하는 데 집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수익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월평균 수입은 500만원 가량이다. 100여개의 오전 물량을 배송한 후에는 다시 서브터미널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오후 배달을 준비한다. 이날 오후 물량은 200개 가량.
물량이 몰리는 화요일에는 하루 평균 400여개를 배송하지만, 이날은 비교적 여유로웠다. 오후 배송을 끝내면 담당 구역 인근에서 확보한 개인 거래처에 들러 택배 물량을 수거한다. 다시 서브 터미널로 돌아와 허브 터미널로 이동할 간선트럭에 옮기면 이날 하루 일정이 끝난다. 일과를 일찍 시작한 그의 평균 퇴근 시간은 오후 6시다.
◇체력은 물론 효율적인 동선 짜기 능력까지=택배 기사의 든든한 ‘조력자’인 분류 도우미는 휠소터의 등장으로 생겨난 신규 직업이다. 휠소터가 지역별로 1차 분류를 해준다면, 분류 도우미는 최종 분류를 돕는다. 현재 양천 서브터미널에서 23명의 분류 도우미가 근무하고 있다. 여성 분류 도우미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택배 기사인 아들의 소개로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는 중년 여성 A씨는 “하루 4시간이라도 나와서 시간당 9,000원 정도 벌 수 있다”며 “무거운 물건도 있지만 일하다 보면 익숙해진다”며 웃어 보였다.
으레 택배기사의 필수조건으로 체력을 꼽지만, 택배 기사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선을 짜는 능력이다. 실제 CJ대한통운의 최고령 기사는 80세로 그는 70세가 넘어서야 택배 일을 시작했다. 경북 경산지점 소속인 그가 해당 지역의 지형지물을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홍우희 신월대리점 집배점장은 “택배 기사가 단순히 배달만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운송장의 주소를 보고 한 번에 동선을 짤 수 있어야 한다”며 “얼마 전에는 입사 후 교육을 받던 택배 기사 두 명이 이를 숙지하지 못해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배달로 연 소득 1억, 어떻게 가능할까?=최근 높은 수익을 바라고 택배 기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택배 베테랑’들은 ‘집하(택배 수거)’의 비중을 늘리라고 조언했다. 택배기사가 직접 발품을 팔아 온라인 쇼핑몰 등을 거래처로 만들면 그만큼 집하 수량이 늘어나고, 이는 수입으로 연결된다. 통상 2,000원짜리 택배를 배송하면 최대 210원을 벌 수 있다. 일반 배송 건당 720원을 가져가는 데 비해 수익은 낮지만 대량의 물건을 효율적으로 떼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월평균 6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택배기사 경력 10년차 이용구(63)씨는 “1억 이상 소득을 올리는 택배 기사는 집하와 배송의 비율을 최대 7대 3으로 잡을 정도로 집하 작업에 비중을 둔다”며 “지역 주민들의 추천을 통해서 거래처를 15곳까지 추가했다”고 비법을 전했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이 12개월 근속한 택배기사 1만 2,000여명의 지난해 소득을 분석한 결과, 상위 20%의 평균 연봉은 9,730만원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개인 영업을 통해 대형 거래처를 확보하고 별도의 아르바이트 인력을 고용해 배송 업무를 위탁하고 있었다.
/글·사진(부천)=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