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경에서 이민자 아동들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고 있다는 실태가 폭로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대응책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분위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의를 표명한 세관국경보호국(CBP) 국장대행의 후임으로 이민정책 강경파를 선임했다.
존 샌더스 CBP 국장대행은 25일(현지시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일부는 알다시피 어제 나는 케빈 매컬리넌 장관(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성공적으로 업무를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겨두겠지만 CBP 직원들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경력에 가장 만족스럽고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임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온적 이민 대응을 문제 삼아 지난 4월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을 트윗으로 경질했으며, 이어 클레어 그레이디 부장관 대행도 사표를 냈다. 이에 따라 케빈 매컬리넌 CBP 국장이 국토안보장관 대행으로 자리를 옮겼고 공석이 된 CBP 국장을 샌더스가 대행해오다 두 달도 안 돼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샌더스 후임은 이민정책 강경파인 마크 모건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대행이 맡는다고 전했다. 모건은 ICE 국장대행을 맡기 전 보수 성향 매체인 폭스뉴스에 자주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이민 정책을 지지했으며, 지난주에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을 추진하기도 했다. 모건의 이동에 따라 ICE 국장대행은 매트 앨빈스 ICE 부국장이 맡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3일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불법 이민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가 하루 전인 22일 2주 연기 방침을 밝혔다. 이후 이민 아동들이 몇 주간 씻지도 못한 채 악취와 배고픔 속에 구금 생활을 하는 실태가 언론을 통해 적나라하게 폭로되면서 미국에서 이민 대응책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텍사스주 클린트에 있는 아동 수용시설엔 씻을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몇 주간 씻지 못한 아이들도 수두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실태가 알려지자 미국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나 해적보다도 더 비인간적으로 이민자를 다루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2008년 탈레반에 납치돼 7개월간 갇혀 지낸 데이비드 로드 전 뉴욕타임스 기자는 트위터에 “탈레반은 내게 치약과 비누를 줬다”고 썼다.
지난 2012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언론인 마이클 스콧 무어도 이민자 아동들의 처지가 “소말리아에서의 내 경험보다도 못하다”고 말했다. 2년 넘게 포로 생활을 했던 그는 “당시 상황은 매우 끔찍했다”며 척박한 콘크리트 감옥에서 때로는 전기도 없이 지내야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그러나 “완전히 비참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도록 최소한의 것들은 있었다”며 치약과 비누, 하루 한 번의 샤워, 매트리스가 제공됐다고 말했다.
이란 구금시설에 1년 반 동안 갇혀있던 제이슨 레자이언 WP 기자도 구금 첫날부터 치약과 칫솔을 받았다며 “만약 미국이 가장 취약한 이들을 이렇게 대한다면 미국의 가치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클린트 수용시설의 아동 300여 명을 다른 보호시설로 옮겼지만, 다른 시설도 포화상태인 탓에 이 중 100여 명이 다시 클린트로 돌아왔다고 W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