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은 붓을 들고 한 인물을 그려나갔다. 그려나가면서 왜 구태여 이 인물을 다루려고 하는지 골몰한 흔적을 그대로 남겼다. 그의 이야기가 열전도, 자전도, 내전도, 외전도, 별전도, 가전도, 소전도 아닌 이유를 깡총하게 밝힌 뒤 ‘정전’이라고 명명하고 그 까닭도 밝혀 그제야 이 사람, ‘아Q’ 이야기를 시작한다. 루쉰의 ‘아Q정전’에는 시대정신이 담겼다. 루쉰은 ‘마치 마음이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써야 했다고 했다.
아Q정전에서 아Q는 주인공 이름이고 정전은 ‘아Q의 이야기에서 쓸데없는 말을 걷어치우고 할 말만 전하겠다’는 뜻이다. 혁명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던 루쉰의 이 소설에는 ‘르포르타주’ 정신이 흠뻑 배어 있다. 그는 아Q 이야기를 통해 당대에 무엇을 이야기하고 후대에 무엇을 전하고자 했던가. 그건 아Q의 사람 됨됨을 보면 알 수 있다. 아Q는 힘없고 비겁한 날품팔이 최하층민인데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싸우고 못살게 군다. 도무지 인간애·연대·협동과는 담을 쌓은 자다. 한마디로 ‘참 고약한 자’다.
루쉰은 아Q를 통해 몽매한 중국 민중에게 봉건 잔재 청산의 필요성과 동시에 혁명의 허구성에 대해 기록문학으로 남겼다.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는 혁명(신해혁명)은 부질없고, 그 부질없음은 숱한 ‘아Q들’ 때문이니 그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후대는 이를 반면교사 삼으라는 숨은 뜻도 담겼겠다. 루쉰이 아Q정전을 신문에 연재한 것이 1921~1922년이니 어느새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의 말대로 ‘사람은 문장에 의해 전해지고 문장은 또 사람에 의해 전해져’ 아Q정전은 동서를 종횡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세상은 100년 전과 비교해 좀 나아졌을까. 당대가 된 후대인 우리는 교훈을 얻어 진취적이고 타성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공교롭게도 아Q와 발음이 비슷한 아큐(ACCU·아시아신협연합회)와 아큐보다 더 넓은 세계인 워큐(WOCCU·세계신협협의회)의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증언한다. ‘루쉰의 각성은 각성으로 그친 게 아닌가’ 하는 깊은 회의감을 들게 한다. 동시에 루쉰이 말한 거창한 혁명은 아니어도 사명감·목적의식을 떠올리며 정신을 재무장하게 된다.
워큐는 전 세계 117개국, 8만9,026개 신협의 균형 발전과 공동이익 증진을 위해 1971년 1월 조직돼 미국 매디슨에 본부를 둔 세계신협협의회의 영문 약칭이다. 아큐는 아시아 지역에 신협의 확산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71년 설립돼 태국 방콕에 본부를 둔 아시아신협연합회의 영문 약칭이다. 한국 신협은 이사국의 일원으로 워큐에, 회장국의 자격으로 아큐에 매년 참가한다. 신협은 ‘약자가 약자를 돕는 협동정신’을 중심 가치로 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100년 전 아Q 같은 파렴치한이 아직도 판을 친다. 신협이 존재할 이유다. 오늘도 구두끈을 질끈 맨다.